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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독일에서는…여성생활 현장취재<2>|"실속없는 통일" 무력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베를린시의 옛 동독지역에 속해 있던 키엔베르크거리에 있는 훔볼트대학 전 한국학교수헬가 피히트박사(58) 집에서는 요즈음도 주말이면 자주 저녁식탁에서의 열띤 통일논쟁이 밤늦도록 계속된다.
오는 10월3일이면 독일국민들이 전 세계인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감격과 환희 속에 맞이한 통일 2주년. 이제 통일을 환상 없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독일인들은 통일이 엄청난 통일비용부담,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동질성 회복, 실업사태, 문화쇼크등 산적한 문제들도 안겨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갈등 속에서 현실적응에 나선 것이다.
독일통일은 독일인 모두의 생활에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특히 옛 동독지역에 살던 사람들 중에는 생활의 뿌리부터 흔들린 경우도 적지 않다.
동독출신의 피히트박사댁 이야말로 통독 2년을 맞은 독일가정의 변화가 실감나게 느껴지는 케이스다. 건축기사였던 남편은 은퇴한 상태였지만 피히트박사는 통일1년5개월만인 지난 3월, 30년 가까이 봉직해온 훔볼트대학을 떠나야 했다.
통일후 연방정부는 훔볼트대학뿐아니라 동독지역에 있던 모든 대학 전 교수들의 자격심사를 한다며, 그 직책에 머물러 있으려면 새로 이력서를 내고 교수자격심사를 거쳐 재임명을 받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러한 정부의 결정에 대부분의 교수들이 반발했다.
『정부측의 설명은 동독지역대학교수중 학문연구와는 거리가 먼 공산당원이 끼어있어 교수들의 자질심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개중에는 그런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학문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사람들입니다. 그런 학자들에게 새로 심사를 받고 자질점검을 받으라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대학에 머물러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피히트박사의 절규에 가까운 증언이다. 피히트박사의 두 아들도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기술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29세의 맏아들은 전자기계 제작기사로 통일전 동베를린의 최신 기술설비를 갖춘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통일 전 큰아이는 공장의 운영팀이 고식적인 사고를 하고 열의가 없어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다며 동독의 공산당 독재방법을 회의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통일이 되니까 공장의 소유권 문제를 해결 못해 공장가동이 중지되어 실업상태예요. 차라리 옛 동독시대가 더 나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22세의 대학생인 둘째아들은 역사와 미술사를 공부하는 대학생.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그는 일찍이 18세부터 공산당원이 되어 활동을 했다. 통일 후 그는 자신이 믿었던 정치이념이 여지없이 무너진 것에 절망,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차 자기가 경험한 것만 믿기로 했다는 폐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말에 두 아이와 우리 부부, 거기에 아이들의 여자친구들까지 합세하여 통일논쟁이 벌어지면 끝이 없어요. 결론은 늘 독일통일의 타당성 자체에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통일의 방법에는 문제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서독이 우세한 경제력을 앞세워 동독을 흡수통일하고 동독출신을 2등 시민 취급하는 것은 부당하지요.』
연방정부는 옛 동독지역에 있던 5개주 및 도시등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되어 이렇다 할 활동없이 국가예산만 축내는(?)엄청난 수의 예술가들에게 정당하게 실력평가를 받은 후 활동을 하거나 아니면 실력으로 승부하는 예술시장에 뛰어들어 자생력을 키우라고 권한다. 이도 저도 못하면 사회복지기금을 신청하면 최저의 생활은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랜 공산주의 체제에 길들여져 당과 소속기관이 정해준 노선에 따라 살아온 대부분의 동독인들에게 이러한 자본주의체제의 자유경쟁은 두렵고 낯설어서 적응하기가 힘들어 갈등을 느낀다는 것이 베를리너 차이퉁지의 문화담당편집인 볼커 뮐러 박사의 얘기다.
독일의 손꼽히는 한국학 연구가로 이미 50년대부터 북한을 드나들며 연구를 한 피히트박사는 『오늘의 코리아』『한국철학사』의 저자이며 국제 고려학회 부회장, 독일-코리아 문화협회 회장이다. 한때는 한국인들에게는 접촉을 기피해야 할 인물이었다. 90년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이렇게 충고한다.
『서두르지 말고 먼저 물자와 인적교류부터 시작하여 서서히 그 폭을 넓혀나가야 합니다.
북한은 동독과는 비교할 없으리만큼 폐쇄된 사회이므로 독일처럼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된다면 그 엄청난 이질감과 쇼크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베를린=박금옥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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