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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문화(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찰스 강변에 한가로이 떠있는 요트를 보면서 하버드 스퀘어에 이르면 하버드 워즈워드라는 책방과 학생공제조합인 쿱(Coop)이 먼저 눈에 띈다. 주변 길모퉁이의 카페에서는 교수와 학생이 환담하는 모습이 보이고 반바지에 러닝셔츠만 걸치고 괴상한 머리모습을 한 학생들이 쿱에서 저녁거리 쇼핑을 한다. 자유로우면서도 열띤 분위기가 느껴진다.
어제 연세대 학생들이 신촌에서 유흥문화를 추방하자는 토론회를 벌였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문득 몇해전에 가 본 하버드대학의 주변풍경이 떠올랐다. 젊은 지성인들이 모이는 대학촌이라면 우선 두가지 점이 특이한 모습으로 갖춰져야 할 것이다. 먼저 책방과 카페,그리고 돈없는 대학생들을 위한 값싼 상점들이 들어서야 한다.
신촌 로터리를 둘러싸고 4개의 명문대학들이 동서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80년대 이후부터는 앞서가는 패션가와 유흥가로 소문나더니 6월 항쟁 이후로는 민주광장으로,그 다음에는 학생시위와 최루탄으로 아침 저녁 눈물을 흘리고 다니는 명소가 되기도 했다. 마치 지난날 우리의 청년문화가 어떤 굴절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반영하는듯 하다.
아직도 신촌에는 록카페 50여곳,노래방 60여곳,유흥접객업소 1천여곳과 고급 패션가가 자리잡고 있다. 신촌이라면 아직도 질탕하게 노는 곳,또는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곳으로만 알려져 있다.
이제 다행스럽게도 학생들 스스로가 신촌에 건전문화를 세우자고 발의하고 관할 경찰서와 구청직원,그리고 지역 상인들이 자리를 함께 하면서 그 대책을 상의했다. 몇몇 사람들의 뜻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복잡한 상권과 재산권이 얽혀있는 일이니 추방선언만으로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작은 모임에서 일어난 낮은 목소리지만 대학생들이 새롭고 건전한 청년문화를 신촌에 가꾸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확산된다면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또 구의회와 관할구청,경찰서가 학생들의 이런 노력을 충분히 수렴한다면 우선 퇴폐유흥업소는 정화될 수 있을 것이고 지역상인들의 전업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촌에 새로운 대학문화를 세우자는 바람이 더욱 확산되어 새 모습의 청년문화가 자리잡는 신촌이 되기를 기대한다.<권영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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