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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4597>|제88화 형장의 빛(32) 박삼중|사형수동생의 소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79년 10월초순, 내가 김천 개운사 주지로 있을 때 다리를 저는 한 청년이 찾아왔다.
『스님, 사형수인 제 형님 대신 제가 죽을 수 있게 해주실 수 없습니까? 나 같은 불구자가 형 대신 죽어야 형이 늙은 노부모를 온전하게 모실 수 있으니 제발 형을 살려 주십시오.』
애원하는 그의 얘기를 듣고 나는 참으로 답답했다. 재소자를 교화한답시고 수십년 동안 교도소를 드나들었지만 이런 부탁을 받을 때처럼 곤혹스런 적이 없다. 사형수를 살려달라니, 그것도 용서할 수 없는 흉악범을….
이렇게 울먹였던 이명호라는 사람은 부산의 엽기적인 여인토막살인범으로 대구교도소에 사형수로 있는 형 이량길을 대신해 죽겠다며 뭉클한 형제애를 보여준 사람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의 형은 결국 형장에서 사라졌으나 착한 동생덕분에 생명의 시간을 연장할 수 있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한 이량길은 부산집에서 떨어진 곳에서 자취생활을 하며 회사를 다녔다. 다방에서 일하는 한 여자를 만나 동거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여자는 가출했다. 사건이 일어난 날도 가출한 여자를 수소문하여 겨우 찾아갔는데 여자는 소리소리지르며 발악했다. 주위 사람 보기가 민망해진 이는 여자의 입을 막고 묶은 채로 이불을 쒸우고는 밖으로 나왔다. 저녁에 돌아와 보니 여자는 발버둥치다가 혀를 깨물고 자살해버린 후였다.
내성적인 이는 당황한 나머지 술을 먹고 고민하다 시체를 토막내 선풍기 통에 넣어 버렸다가 결국 검거되어 77년 사형이 확정되었다.
이명호씨는 형이 교도소 안에서 기독교에 귀의, 모범수가 되어 재소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줄 정도로 새 사람이 되었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형을 살려내겠다는 동생의 형제애에 감동해 나는 대구교도소로 찾아가 그의 형을 면회했다. 이량길은 이전의 삶이 후회스럽고 아쉽지만 남은 시간동안 속죄하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재소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은 『주님안에서 거듭 태어난 기쁨과 지은 죄의 속죄 값의 하나이며 이를 죽을 때까지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그해 12월이 되자 동생은 초조해졌다. 형 확정 2년이 되어가니 연말을 넘기지 않고 집행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구를 데리고 무작정 상경했다. 이량길이 속죄의 시간을 좀더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탄원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동정하지 않는 사건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다녀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때 기독교 원로목사인 강신명목사가 떠올랐다. 몇 차례 전화 끝에 새문안교회의 강목사와 통화할 수 있었다. 우리 둘은 작은 희망의 줄을 잡고 목사님을 만나러 갔다. 강목사께 사형수 이량길이 비록 인간으로는 범해서는 안될 죄를 지었지만 지금은 지옥에서 거듭나 주님의 품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그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며 이 세상에서 지은 죄를 원 없이 갚고 깨끗한 영혼으로 하느님 앞에 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강목사는『우리가 해야할 일을 스님이 하고 계시군요』하며 친절하게 내 손목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당시 숭전대 총장으로 임명받아 바쁜 와중에도 불구하고 탄원서를 들고 뛰어다니면서 몸소 힘써 주었다. 이영욱 법무부차관에게 넘겨진 탄원서는 형집행을 최대한 연기시키겠다는 확답을 얻어냈다.
이량길은 좀더 연장된 삶 속에서 모범적으로 생활하고 봉사하면서 담담히 죽음을 준비했으며 1년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묵묵히 죽음의 순간까지 다른 재소자의 발을 씻어주고 거듭난 삶을 살았던 한 사형수의 모습과 형의 목숨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피맺힌 노력을 하던 동생의 눈물, 그리고 은발을 휘날리며 자비와 사랑을 몸으로 베푼 강신명목사에 대한 고마움을 나는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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