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시가총액 두달새 120조원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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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제가 맡고 있는 고객 돈만 100억원이 넘습니다."

코스피지수가 1700선을 넘어선 31일. 미래에셋증권 김기영 아시아선수촌지점장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연일 이어지는 코스피지수의 사상 최고가 경신이 오히려 두통거리다. 고객이 맡긴 돈은 쌓여만 가는데, 주가가 너무 올라 펀드든 주식이든 선뜻 투자에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지점장은 "요즘 상담의 대부분은'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넣어둔 돈을 투자하고 싶은데 언제 들어가는 게 맞느냐. 조정은 언제쯤으로 예상하느냐'는 식의 질문"이라고 말했다.

증시로 돈이 끝없이 몰려들고 있다. 연초부터 주가가 거의 쉼 없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데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갈 곳을 잃은 자금들이 증권가로 몰려들고 있다.

◆"조정 기다리다 100포인트 놓쳤다"=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현재 고객예탁금은 12조8507억원으로 13조원에 육박했다. 2월 초만 해도 8조3000억원대에 불과했지만 3개월 사이에 50% 이상 급증했다. 고객예탁금이란 주로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 예탁계좌에 머물고 있는 돈을 말한다. 증권사의 CMA 잔액도 기록적인 수치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8조5482억원이던 CMA 잔고는 4월 말 현재 16조2649억원까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단기자금 운영을 주로 하는 CMA는 요즘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할 돈이 잠시 머무르는 곳으로 사용된다. 고객예탁금과 CMA 모두 증시에 뛰어들기를 기다리는 대기자금인 것이다.

김 지점장은 "주가 상승과 더불어 대기자금이 급증하는 것은 올 초부터 증권사 일각에서 제기된 '2분기 조정론'에다 쉬지 않고 급속도로 올라버린 증시 때문"이라며 "'조정을 기다리다 100포인트나 더 올라버렸다'는 불만 섞인 투자자들의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고 전했다.

◆역사 새로 쓰는 한국 증시=계속되는 조정론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시는 매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31일 국내 증시는 '1조 달러 클럽'에도 가입했다. 이날 거래소와 코스닥을 합친 시가총액은 929조8000억원으로 치솟았다. 원-달러 환율(927.7원)을 적용한 달러 기준 시가총액은 1조22억 달러다. 아시아에서 일본.중국.인도에 이어 네 번째로 1조 달러를 넘어섰다. 거래량도 기록을 세웠다. 31일 코스피 거래대금은 7조8800억원으로, '정보통신(IT) 버블'이 한창이던 1999년 11월 12일의 기록 7조3500억원을 가볍게 따돌렸다.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의 이윤학(경영학 박사) 연구위원은 "주가가 급등하는 것은 증시로 돈이 몰려들면서 유동성이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해진 데다 하반기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개인자금인 CMA와 고객예탁금뿐 아니라 대표적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도 아직 투자금을 다 쏟아붓지 못한 상황"이라며 "최근 며칠 새만 보면 한국 증시가 아시아를 이끌고 있는 형국"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주가가 계속 급등하고 대기자금마저 넘쳐나면서 '조정론'은 힘을 못 쓰고 있다. 지수가 조금만 하락해도 이를 시장 진입의 기회로 삼으려는 투자자가 많아서다. 신영증권 김세중 투자전략팀장은 "지금의 장세가 과열이긴 하지만 장기적으론 상승 추세가 분명한 만큼 2년 이상 장기투자자라면 지금이라도 들어가는 것이 맞다"며 "그러나 단기투자라면 한 박자 늦추면서 조정기를 이용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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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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