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ONEY] 인터넷선 싼 이자 골라 돈 빌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2면

'김밥집을 열려고 합니다. 대출 부탁합니다. ID:hanajo84, 신청액:1000만원, 이자율:연 30%, 입찰 총액:○○만원, 입찰 건수:○건, 남은 시간:6일20시1분…'.

앞부분만 보면 돈을 빌리려는 것 같은데, 뒷부분을 읽으면 언뜻 인터넷 경매 같은 느낌이다. 최근 인터넷상에 속속 등장하고 있는 신생업태 '인터넷 경매 대출' 사이트에 올라온 내용 중 하나다. 옥션(www.auction.co.kr)이 인터넷 경매를 통해 물건을 사고 파는 곳이라면, 인터넷 경매 대출 사이트는 물건 대신 돈을 빌려주고, 빌리는 사이트다.

인터넷에서 경매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머니옥션(www.moneyauction.co.kr)이라는 사이트가 15일 국내 최초 개인 간 금융 직거래 오픈마켓을 표방하며 서비스를 시작했다. 28일에는 팝펀딩(www.popfunding.com)이 참여자가 중심이 돼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P2P 금융거래 사이트를 내세우며 문을 열었다. 다음달 1일에는 퍼스트핸드(www.firsthand.co.kr)가 등장할 예정이다.

◆경매 통한 저금리 대출=3개사 각각 다른 듯한 구호를 내걸고 있지만 기본 원리는 모두 경매 방식의 대출 알선 사이트다. 완전히 새로운 업태라 관련 규정은 없지만, 돈을 빌려주는 것을 중개하는 만큼 3개사 모두 대부업체로 등록했다. 운영방식은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자신의 신용상태와 대출 희망금액 등을 올리면, 돈을 빌려주겠다는 다수의 사람이 경쟁적으로 싼 이자의 대출을 제시하는 형태다. 이 때문에 기존 대부업체보다는 대출금리가 싸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 업체의 주장이다.

머니옥션은 최고 금리를 대부업체의 금리상한선(66%)보다 낮은 59%로 정했다. 경매 방식으로 대출이 이뤄질 경우 이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대출이 가능해진다는 계산이다. 퍼스트핸드는 대출이자 폭을 15~25%로 잡고 있다. 팝펀딩도 기존 대부업체보다는 저금리로 대출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사실상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셈이지만 신용정보가 나빠지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다. 머니옥션의 김지혜 대리는 "대출 신청자가 신용정보 조회 사이트에서 자신의 신용정보를 조회해 대출사이트에 제공하는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대부업체가 정보를 조회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황스러운 금융감독 당국=인터넷경매 대출업체의 등장에 금융감독원은 당황스러운 모습이다. 처음에는 "유사수신행위를 하는 불법 업체인지 예의주시하겠다"고 반응했으나, 나중에는 "옥션이 활성화하면 대출이자가 줄어들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쪽으로 시각이 달라졌다.

하지만 인터넷 경매 대출사이트가 활성화되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있다. 우선 등록 대부업자가 아닌 사람이 돈을 빌려주는 행위는 현행법상 불법이란 점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제도권 금융을 이용할 수 없는 서민들이 보다 낮은 금리로 이용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고, 불법 대출이 될 수 있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며 "우선은 문제점이 없는지 자세한 실태 파악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머니옥션은 정공법으로 이 문제를 넘고 있다. 돈을 빌려주는 '투자자'는 모두 대부업 신고절차를 밟도록 했다. 하지만 퍼스트핸드는 2000만원 미만의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대부업 등록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퍼스트핸드 정현주 과장은 "법률자문 결과 2000만원 미만의 대출은 개인 간의 거래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부업 등록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대부소비자금융협회 이재선 사무국장은 "대부업 등록까지 해 가며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2000만원 미만 대출도 개인 간에 이뤄지면 불법이기 때문에 금융감독 당국에서 묵인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출자가 돈을 갚지 않을 경우 책임은 오로지 돈을 빌려주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도 사업 활성화의 걸림돌이다. 기존 대부업체가 60%가 넘는 고금리를 받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부실대출에 대한 위험이기 때문이다.

최준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