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값(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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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술품을 좋아하는 한 중견 샐러리맨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65년에 작고한 P화백이 절친한 친구의 형님이었는데 대학에 다니던 50년대 후반 그 친구를 통해 P화백으로부터 30호 가량의 유화 한점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이다. 그 그림을 표구도 하지 않은채 어느 구석엔가 처박아 놓고 군에 입대했는데 제대후 집에 돌아와보니 어머니가 그 그림을 장독 뚜껑으로 쓰고 있더라는 것이다. 지금 P화백의 그림값은 호당 2천만원 이상에 거래되고 있으니 그 그림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더라면 꽤 큰 아파트 한채 값은 되지 않겠느냐며 그 샐러리맨은 쓴 웃음을 지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미술품은 사고 파는 물건이 아니었다. 미술인들 자신도 자신의 작품이 돈으로 환산되어 임자가 바뀌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6·25직후에는 술 몇잔 값에 그림을 대신 주는 예가 흔했고,화가가 전시회를 가지면 감상하러온 친구나 친지들에게 한점씩 나눠주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작품을 만들려면 재료비도 재료비지만 거기에 작가의 모든 혼이 깃들인다 점에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미술품이 단순히 값으로만 따져 상품으로 거래되는 경우 그 예술성은 차츰 빛을 잃게 된다.
우리나라의 미술품들은 80년대 이후 급격하게 투자대상으로 부상해 그 값이 나날이 치솟는 양상을 보여왔다. 최근 2년새 그림값이 15배에서 최고 20배까지 뛰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그림값이 터무니없이 높아 미국이나 유럽에서 활동하는 미술인들이 귀국전이라는 명목으로 국내에서 자주 전시회를 갖기도 한다.
정부는 91년부터 「서화 및 골동품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시행키로 했다가 미술계에 큰 충격을 줄것을 감안해 2년간 그 시행을 유보했었다. 그 시행이 불과 몇달 앞으로 다가오자 미술계는 이의 저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한다. 미술품 수집에 투기꾼들까지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니 뭔가 대책은 있어야겠지만 양도세 시행에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시행에 앞서 중의를 모으는 것도 좋을 것이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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