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선생 영결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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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5월 29일은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이 세상에 나온 날이다. 그러나 앞으로 5월 29일은 금아가 땅에 묻힌 날로 기억될 것이다.

25일 97세를 일기로 타계한 고(故) 피천득(1910~2007)옹의 영결식이 29일 오전 7시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유가족을 비롯해, 시인 김남조씨,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이해인 수녀, 소설가 조정래씨, 가수 노영심씨 등 200여 명이 모였다.

금아의 영결식은 고인이 아끼고 좋아하던 것들로 채워졌다. 금아가 가톨릭 신자였기에 가톨릭 영결 미사가 있었고, 금아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기에 신수정 서울대 음대 학장이 피아노 곡을 연주했다. 영결식이 열리기 전인 오전 5시, 금아의 시신은 서울대 교정을 한 바퀴 돌아나왔고, 이어 서울 반포동 자택을 들렀다.

영결 미사 뒤엔 각계 인사의 조사가 이어졌다. 이해인 수녀는 '피천득 프란치스코 선생님을 기리며'라는 제목의 조시를 읊었다(사진). "존재 자체로 수필이 되고 산호가 되고 진주가 된 분, 생전에 뵙고 돌아서면 그리워지는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으로부터 작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금아의 서울대 제자였던 김우창 교수는 "선생님은 맑은 것이 가려지기 쉬운 세상에서 맑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또 그 맑음은 근접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가셨다"고 말했다. 생전의 금아가 유독 아꼈던 딸 서영(60)씨는 금아의 관 위에 국화 한 송이 올려놓고는 한참 오열했다. 영결식은 끝났고, 금아를 태운 버스는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 장지로 떠났다.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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