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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참여정부 이름이 부끄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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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선진화 방안은 말이 '선진화' '합리화'지 사실상 비판언론의 취재 접근을 봉쇄하는 극약처방이다. 통폐합되는 기자실 숫자보다도 그 배경에 도사린 대통령과 '코드관료'들의 언론에 대한 적대적 인식이 더 무섭다. 정부와 언론 간에 소통의 활성화보다는 소통이 단절 또는 방해받고, 사사건건 소모적 갈등을 벌이는 적대적 긴장관계가 고착돼 정부.언론 모두가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잃고 공멸의 길로 빠져들 위험성 또한 다분하다.

참여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언론과의 '건전한 긴장관계'를 내걸고 잘못된 구조와 관행을 바로잡는 언론개혁에 나섰다.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신문의 시장독과점과 여론지배현상을 막기 위해 신문법을 만들어 통과시켰고, 브리핑제도 도입과 기자실 개방 등 취재보도 관행의 개혁도 밀어붙였다. 그러나 상품과 여론조성이라는 두 기능을 가진 신문을 독과점 규제로 다스리겠다는 발상 자체가 난센스였다. 공정거래 조사 및 세무조사를 둘러싸고 서로 간에 긴장만 높여 왔다.

'개방형 브리핑제' 도입으로 정부 관리와 기자 간의 유착관계는 거의 근절됐다고 자랑하지만 유착이 사라진 자리에 대신 들어서야 할 건전한 관계, 즉 이해와 공감대는 형성되지 못했다. 대통령이 '언론의 특권과 횡포에 대한 견제'를 앞장서 부르짖고, 비판 신문들에 대한 언론중재 신청이 꼬리를 물면서 갈등과 적대관계가 심화하고 있다. 대통령 스스로 언론에 '굴복 않은 것'을 참여정부의 '자랑스러운 업적'으로 치부하며 언론과의 전쟁을 독려하는 판이다.

정부와 언론은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대립적(adversarial) 관계다. 적대관계도, 유착관계도 아니고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견제하며 공생하는 관계다. 따라서 둘 간의 대화 및 접촉 증대는 국민의 알 권리나 언론의 알릴 권리, 또 정부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불가결하다. 정책의 진의나 배경, 선택의 고충이나 불가피성 등 배경설명을 위한 대화는 국민적 이해와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도 요긴하다. 비보도를 전제로 한 배경설명 등은 서로 간에 공감과 친분, 이해와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는 어렵다. 통합브리핑센터나 접견실 수준의 취재문화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더구나 정보공개 청구에 관한 우리의 정보공개법은 유명무실하다. 국가안보나 보안업무는 법 적용에서 제외돼 무슨 비밀보호법을 방불케 한다. 공개를 둘러싼 분쟁은 독립기관 아닌 국무총리실 행정심판위원회가 심의의결해 팔이 안으로 굽게 돼 있다. 공개 여부도 당국자의 재량에 좌우된다. 법에 의한 강제가 아니라 공직자의 공개행정 의지가 그 열쇠다. 공개문화가 없고, 보신주의와 비밀주의가 판치는 상황에서 '폭넓고 신속한' 정보공개가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피해의식과 적대감은 병에 가깝다. 재임 중 잘한 것도 많은데 잘못된 언론의 여론독점 때문에 참여정부의 성과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늘 불만이다. 우리의 매체 현실에서 소위 비판 신문은 수적으로 소수다. 이들의 여론 독점으로 지지율이 낮고 업적홍보가 안 된다고 믿는다면 이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청와대 브리핑과 국정 브리핑 등 정부 홍보매체의 홍보행태는 언론의 비판에 대한 해명 수준을 넘어 정부가 무슨 언론사 같은 착각을 안길 때도 적지 않다. 청와대 홈페이지 운영부터 '선진화'할 용의는 없는가.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는 표현 자체가 언론에 대한 모욕이다. 진정한 참여정부라면 기자실 통폐합보다 부실한 브리핑과 미흡한 정보공개 제도를 보완해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정보접근부터 선진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음 정부도 참여정부의 역사적 업적으로 이를 고마워할 것이다.

변상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