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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조백일장5월] "현실과 동떨어진 시조 짓기 반성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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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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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회사원 채성림(41.사진)씨가 중앙 시조백일장 5월 장원을 차지했다.

채씨가 들려준 사연은, 앞선 당선자들이 털어놓은 당선 소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릴 적에 품었던 문학의 꿈을,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한동안 내려놓고 있다가 우연히 시조를 접하면서 다시 집어든 것이다. 이러한 채씨의 사연은 중앙시조백일장 당선자의 전형적인 사례 중 하나다.

"시조를 시작한 건 5년쯤 됐고요. 하지만 요즘엔 시조를 알면 알수록 더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장원으로 뽑힌 작품은 지난해 신춘문예에서 낙방한 뒤 의기소침해 있던 채씨가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쓴 것이다. 오랜, 무엇보다 꾸준한 습작의 흔적이 작품에서 묻어났다. 이달 심사위원인 이정환.이승은 씨가 처음부터 채씨의 작품을 주목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안정적이고 노련한 솜씨는 여느 응모작보다 단연 돋보였다.

"언젠가 경남 사천을 지나는 길에 이발소 문을 열어놓고 문 앞에서 졸고 있는 한 할아버지를 본 일이 있습니다. 그 모습에서 어쩔 수 없는 시대 상황 때문에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지요."

채씨의 말마따나, 장원작은 사라져가는 것, 잊혀져 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안타까운 심정이 읽히지만 한편으로는 담담함을 유지하고 있다.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시적 대상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데에서 채씨의 녹록지 않은 공력이 짐작된다.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 시조의 주류를 이루다 보니 일반인의 관심이 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자유시는 소재나 주제에 제약이 없습니다. 시조를 하는 사람들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조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대뜸 쓴소리부터 한다. 시조에 대한 채씨의 관심이 제법 오래됐다는 게 이 대목에서 다시 드러난다. 그는 바쁜 직장 생활에도 한 달에 두 권 이상의 독서량을 채우기 위해 늘 책을 들고다닌다고 했다. "결국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 무슨 글이 되었든 글 잘 쓰는 비결이 아니겠느냐"고 조심스레 말했다.

손민호 기자

심사위원 한마디
향수의 대상 포착 … 삶의 애환 세련되게 직조

이달에는 100편이 넘는 응모작이 들어왔다. 대체로 형식을 잘 알고 있는데 비해 자신의 삶, 즉 삶의 현장에서 맞부닥치는 실질적인 고민이나 고통을 노래하는 작품은 드물었다. 특히 대학생의 응모가 많았는데, 젊은이답지 않게 '삶의 막장' 같은 표현을 별생각 없이 노출하여 감정 과잉을 보이거나, 자신의 삶을 지나치게 어둡게 표현하고 있었다. 물론 삶 자체가 어려움의 연속일 수도 있을 테지만, 발랄하고 밝은 쪽을 보려는 노력도 함께 필요할 것이다.

입상작을 보자. 장원에 오른 채성림의 '김씨네 이발관'은 오늘의 세태를 잘 드러내고 있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이발관은 성인 남성으로 붐볐고, 남자아이도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많이 드나들었다. 그러나 요즘은 동네마다 미용실이 성행하고 이발관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시대가 많이 달라진 까닭이다. 이제 동네 이발관은 향수의 한 대상으로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작품은 그런 정황을 포착하여 삶의 애환을 밑바닥에 깔고, 네 수 한 편으로 군더더기 없이 직조해 보인다. 둘째 수의 '증언'이라는 말에서 상투성을 느끼지만,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 세련된 점이 흠일 수 있을 정도로 잘 짜인 구도를 보이고 있다.

차상 김용채의 '나무아파트'는 한 그루의 나무가 거느리고 있는 식솔에 대한 애정 어린 눈길을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작품을 많이 써 본 솜씨다. '산빛도 나누며 사는 한 울타리 이웃이다'라는 표현은 미묘한 울림을 던진다. 그러나 셋째 수에서 '나무아파트'를 '베풀고 보듬어 안는 어머니의 넓은 방'으로 결구를 맺은 것이 다소 아쉬운 점이다.

차하인 강보라의 '일기장'은 대학생의 작품이다. 세 편을 투고했는데 형식을 잘 익히고 있고, 시상을 길게 밀고 나가는 힘이 있다. 일기장이 시의 화자가 되어 일기를 쓰는 주체에게 발언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사유의 깊이는 없으나,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여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어색한 몇 군데를 손보았다.

끝까지 논의된 이들로 김정원.연선옥.송재용씨, 대학생 투고자로는 민상용.오진아.김진선.정아람.윤기영씨 등이 있었다. 기본 형식에 더욱 충실하면서 시대성을 띄거나 자신의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노래하는 일에 더욱 힘쓴다면 앞으로보다 좋은 결실을 얻으리라 믿는다.

<심사위원: 이정환.이승은>

◆응모 안내=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 매달 말 발표합니다. 응모 편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해마다 매달 장원과 차상.차하에 뽑힌 분을 대상으로 12월 연말장원을 가립니다. 연말장원은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당선자(등단자격 부여)의 영광을 차지합니다. 매달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겐 각각 10만.7만.5만원의 원고료와 함께 '중앙시조대상 수상작품집'(책만드는집)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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