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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욱씨 <강원산업명예회장>|근검으로 이끈 40년 경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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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재계에서 사옥신축과 관련한 이런저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늘 빠지지 않는 것이 서울신
문로2가 고려병원 옆 길가에 자리잡은 2층 짜리 낡은 건물이다.
철강·연탄·광업 등에 걸쳐 연매출액 1조원이 넘고 재계랭킹 20위 권 대인 강원산업그룹의 본사인 이 건물이 과연 올해쯤엔 새 모습으로 바뀔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그러나 호사가들의 이런 논의도 3∼4년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게 됐다.
올 들어 그룹 총수인 정문원 회장과 임원들이 또다시 사옥신축계획을 추진했지만 바로 강원산업의 창업자인 정인욱 명예회장(81·현 회장 부친)의 반대로 95년 뒤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기업이 제품생산에 모든 힘을 기울여야지 건물이 중소기업처럼 보이거나 남들의 이러쿵 저러쿵 하는 말이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남들 다하는 부동산투기나 재테크·서비스산업 등을「천한 것」으로 치부, 평생을 검약과 제품생산만을 고집하며「진짜 기업가」로서의 길을 걸어온 그다운 말이었다.
일선에서 활동하던 시절, 그는 검약과 관련된 숱한 일화를 남겼다.
황해도 대부호의 아들로 일본 와세다대학까지 나온 엘리트기업인이고 전경련 부회장 등 화려한 대외활동을 벌인 그였지만 그의 발에는 항상 기워진 낡은 구두, 몸에는 유행과 동떨어진 양복이 걸쳐졌다.
고령에도 혼자 지방공장 등에 출장 다니는 것이 안쓰러워 부하직원들이 배웅이나 마중을 할라치면『그렇게도 할 일이 없느냐』는 호통이 여지없이 터져 나왔고 전화 받는 여직원 1명이 그룹총수 비서실의 전부였다.
근검절약은 부하직원에게도 강조되어 현 임원까지도『입사이후 지금까지 대외서류 외에는 이면지나 헌종이 말고 새 종이를 써본 적이 없다』고 전할 정도다.
이 때문에 가끔씩은「고지식」「구시대적」「구두쇠」라는 단어들이 부각되기도 하지만 『땅 투기·돈놀이 등은 자신의 기업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나라엔 결코 도움이 안된다』는 그의 경제철학에는 빛 바램이 없다.
그리고 해방이후 수많은 기업들이 명멸하는 가운데서도 강원산업이 그가 지금도 지키고 있는 40년 된 나무책상처럼 묵직하게 재계에서 나름대로의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같은 정신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이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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