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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학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이틀이 멀다하고 쌓이는 빨래 감들, 일상의 틈바구니 속을 허우적거리며 오늘 아침도 빨래한 허드렛물이 아까워 그 물로 시멘트가 발라진 좁은 마당청소를 하고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물줄기 따라 이 구석, 저 구석 쓸어 비비며 찻길이 내다보이는 대문 앞까지 청소를 마무리해갈 즈음 한 부인이 여자아이를 데리고 집 앞으로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등으로, 이마로 흐르는 한줄기 상쾌한 땀을 닦으며 잠시 그들을 지켜보았다.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딸아이가『엄마, 저기 울어대는 매미 잡아다 곤충채집하면 되겠다』고 말한다.
매미소리에서 늦여름의 정취 따위는 이 꼬마와는 상관이 없는 듯 싶었다. 그러자 차림새가 꽤 멋쟁이로 보이는 엄마는 아주 무심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곤충채집은 무슨 곤충채집…. 필요하면 문방구에 가서 사면 돼』하며 집 앞을 지나쳐 멀어져가고 있었다.
낭랑하고 고운 목소리로 삭막한 도시에서도 한 가닥 자연을 느끼게 하는 것이 매미.
어쩌면 그 엄마와 그 아이는 그다지도 무심하고 무신경할 수 있을까. 그들 모녀의 비 정서적인 대화에 나는 괜히 실망과 충격을 거듭 받으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두 여자아이의 엄마다. 나의 딸들은 매미와 나비·벌과 작은 곤충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지난봄 뒷산에서 개미 구경을 하다가 작은딸이 개미집을 장난 삼아 허물어버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우리도 그 모녀와 별다를 바 없다는, 잊고 있던 기억들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내 유년의 고향을 아주 조금만이라도 아이들에게 느끼게 해주어야겠다는 욕구에 불이 붙는다.
매일은 힘이 들겠지만 학교와 유치원이 쉬는 일요일, 1주일에 한번만이라도 남편과 함께 두 딸을 앞세우고 뒷산으로 자연학습을 떠나야겠다. <경남 울산시 동구 대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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