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짧은 낮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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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문태준(1970~ ) '짧은 낮잠' 부분

낮잠에서 깨어나면
나는 꽃을 보내고 남은 나무가 된다

혼(魂)이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
낯선 곳에 혼자 남겨질 때가 있으니

오늘도 뒷걸음 뒷걸음치는 겁많은 노루꿈을 꾸었다

꿈은, 멀어져 가는 낮꿈은
친정 왔다 돌아가는 눈물 많은 누이 같다
(중략)
오후는 속이 빈 나무처럼 서 있다



꽃을 보내고 남겨진 나무가 되는 기분, 낮잠이 남겨놓은 낮잠의 그림자 같은, 혼이 나간 묘사가 절묘하고 기막히다. 낮꿈에서 눈물 많은 누이의 친정길이라니? 세상의 모든 그리움의 이름 누이여! 없는 누이는 없어서 더 그리움이 되는 시인에게, 낮꿈 아니라도 자주 보이거라.

유안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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