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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숲 길따라 '랑도네' 프랑스 최고 인기 스포츠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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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20일 뇌이 플래장스 걷기행사에 참가한 RIF 회원들이 출발에 앞서 몸을 풀고 있다.

프랑스에서 걷기는 스포츠의 하나로 당당히 대접받고 있다. 그것도 인기 종목으로 각광받고 있다. 보고 즐기는 것으론 축구를 최고로 치지만 직접 참여하는 스포츠론 걷기만 한 종목이 없다는 것이다. 운동 부족을 해결하고 자연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동시에 주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간 르피가로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가장 인기 있는 참여 스포츠였던 사이클과 테니스를 제치고 2005년부터 걷기가 최고 인기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프랑스어로 랑도네(randonee)로 불리는 걷기는 주로 강변이나 산길 등 자연과 함께한다는 게 특징이다. 걷기협회격인 랑도네협회(FFRP)에 따르면 이 나라의 걷기 인구는 1500만 명에 이른다. 운동할 수 있는 체력을 가진 사람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걷기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동호회는 전국에 2만5000여 개나 있다.

◆ 함께하는 행사로 각광=프랑스인들의 걷기 현장에 동참해 봤다. 일요일인 20일 오전 10시, 파리 근교 뇌이 플래장스의 숲길 입구에는 70여 명의 '일드프랑스 랑도뇌(RIF: Randoneurs d'ile de France)' 회원이 모여 몸을 풀고 있었다. 일드프랑스는 파리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을 말하며, 랑도뇌는 걷는 사람을 말한다. 현장에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나온 가족부터 젊은 커플과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이 모였다. 회원들은 '출발' 신호에 맞춰 일제히 "와" 소리를 지르며 함께 걷기 시작했다.

30여 분이 지나자 걷는 속도의 차이에 의해 일행은 자연스럽게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땀을 흘리며 경보 수준의 잰걸음으로 걷는 20여 명이 선두 그룹을 형성했고, 한참 뒤로 가족과 50대 중심의 50여 명이 뒤를 따랐다. 하지만 단순히 조용히 걷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리더의 인도에 따라 빠르게 걷다, 천천히 걷다를 반복했다. 그래야 걷는 효과가 크다는 설명이다. 큰 나무 숲길을 지날 때는 "심호흡하세요"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다리를 지나갈 때는 "강 구경 좀 하면서 천천히 걸어요"라는 지시가 나왔다.

낮 12시30분쯤 골인 지점인 아브롱 언덕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손뼉을 치고 서로 등을 두드리며 격려했다. 이들은 가져온 샌드위치 등으로 가볍게 점심식사를 한 뒤 RER(교외전철)을 타고 파리로 돌아갔다.

이날 걷기행사에 참여한 회원 르네(40.여)는 아브롱 언덕의 꼭대기에 오른 뒤 "언덕길이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자연 속을 두어 시간 걷고 나니 온몸에 새로운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 자연과 더불어 즐겨=이날의 걷기 행사는 프랑스 랑도네의 특징을 요약한다. 더러는 높은 산이나 사막을 횡단하는 랑도네도 있지만 보통 집에서 멀지 않은 자연에 나가 한나절 열심히 걷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프스.피레네 산맥 인근을 제외하곤 산이 드물고 국토 대부분이 평지이기 때문이 우리나라에서 등산하듯 자연 속을 걷는 셈이다.

이처럼 걷기 열풍이 부는 이유는 무엇보다 별 준비 없이도 간단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FFRP 사무국의 카발레이로는 "비용이나 시간 부담 없이 운동할 수 있고, 무엇보다 도시인들에게 자연이라는 메리트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걷기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 퓨전형 걷기 유행=최근 들어서는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숲이나 호숫가 걷기를 비롯, 1박2일 동안 몽블랑 산악지대를 걷는 산악 랑도네, 역사 전문가를 대동하고 역사 유적지를 탐방하는 유적 랑도네, 식물 탐구 랑도네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걷기에 레저.문화.과학 행사와 접목한 퓨전형 프로그램이 줄줄이 개발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전.단체전을 포함하는 대규모 걷기 대회만도 해마다 수십여 개가 열린다. 걷기가 경쟁 스포츠로 당당히 성장하는 모습이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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