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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holic 채인택 런던취재기 #5] 런던 템즈강 강변길을 보행자에게 주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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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템즈 강변의 모습. 템즈강은 런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구간에서는 강변이 모두 보행로다. 강을 보며, 강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람 중심의 도시란 게 이런 것 아닐까? 살고 싶은 도시란 가만히 앉아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도시도 국제적으로 경쟁하는 시대가 아닌가.(사진=채인택 기자)

▶처음부터 여왕 즉위 25주년 축하를 위해 걷기 길 기획
‘주빌리 워크웨이’는 1977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즉위 25주년을 맞아 ‘실버 주빌리 워크웨이’라는 이름으로 1차 완공됐습니다. ‘실버’란 말이 하나 더 붙은 겁니다. 실버 주빌리는 25주년을 뜻하는 것입니다.
주빌리 라인이라는 전철 노선은 원래 여왕 즉위와는 무관하게 계획했던 것이지만 마침 즉위 25주년이 되는 해에 완공이 되는 바람에 주빌리라는 이름이 붙였지만, ‘주빌리 워크웨이’는 처음부터 여왕 즉위 25주년 축하를 위해 기획된 일이었습니다.

→헝거포드 다리를 지나며 바라본 워털루 다리의 모습. 1815년 웰링턴 경이 나폴레옹 군대를 무찌른 워털루 전투에서 따온 이름이다. 1871년 화강암으로 다리를 만들었지만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1920년 이를 무너뜨리고 새로 짓기 시작해 42년 부분적으로 개통했으며, 45년 2차대전 종료 직전에야 완전 개통됐다. 2차 대전 당시 런던의 다리 가운데 독일군의 폭격을 당한 유일한 것이다. (워털루라는 이름 때문에 프랑스 군이 폭격을 했다면 이해가 가지만...^^)
워털루 다리, 또는 워털루 브리지는 한국인에게도 아주 익숙하다. 비비안 리와 로버트 테일러가 주연한 할리우드 영화의 배경이자 제목이 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2차대전 초엽인 40년에 만들어졌다. 영화에서 전선으로 떠나기 직전의 남자 장교가 여자 발레리나를 이 다리 아래에서 만난 시기는 1차대전 당시다. 영화는 2차대전 당시 다시 이곳을 찾은 남자 주인공이 1차대전 당시를 회상하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한 세대, 두 번의 대전이라는 아이로니컬한 일과 남녀의 운명이 이 다리를 배경으로 펼쳐진 것이다.

워털루 다리는 항상 깨끗한 백색으로 유명하다. 이유는 뭘까? 이 다리는 포틀랜드 스톤이라는 돌을 써서 만들었는데, 이 돌은 비만 맞으면 하얗게 청소가 되기 때문에 런던의 비와 안개만 맞으면 항상 희고 밝은 색을 유지한다. 비 많고 우중충한 런던의 특색을 잘 살린 다리다.

이 다리는 세계 첩보전에서 유명한 사건이 일어난 현장이기도 하다. 78년 9월7일 망명한 불가리아 반체제 인사 게오르기 마르코프가 버스 정류장으로 가기 위해 이 다리를 건너다 맞은편에서 오던 남자와 잠시 다리를 부딪쳤다. 우산을 든 이 남자는 외국어 억양으로 사과하고 사라졌지만 그날 밤부터 마르코프는 심한 열에 시달렸으며 사흘 뒤 숨졌다. 부검 결과 그의 종아리에서 독약인 리신이 든 미세한 크기의 백금 탄알이 발견됐다. 나중에 KGB(소련 국가보안위원회)의 지원을 받은 불가리아 암살요원이 우산 총으로 그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우산 총 암살’사건으로 유명하다. 스파이, 특수무기, 암살 등의 키워드로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다. 요즘도 현장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산을 들고 말이다. 런던은 스파이 관광으로도 유명하다. 그것도 걸어서 찾는 스파이 관광 말이다.

→테즈 강변을 계속 잇는 보행로의 모습. 산책하는 시민은 물론 관광객의 발길도 끊이질 않는다. 이곳은 원래 부두였던 곳으로, 물류의 변화로 템즈강 부두가 몰락하면서 폐허가 됐던 것이 재개발됐다. 이를 보니 도시를 살아있게 만드는 가장 좋은 보약이 걷는 길의 개발이 아닌가 싶다.(사진=채인택 기자)

▶즉위 25주년 행사의 절정이 보행로 개통
영국 정부 기구인 환경위원회와 맥스 니컬슨이 위원장을 맡았던 ‘여왕 즉위 25주년 기념 런던 축하위원회’가 워크웨이 기획 주체를 맡았습니다. 77년 6월9일 런던의 문화복합 공간인 사우스 뱅크에서 첫 플라크(표지판)를 여왕 자신이 제막하면서 워크웨이가 개통됐습니다. 길 개통 행사는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가운데 화려하게 열렸습니다. 즉위 25주년 기념 행사의 절정이었다는군요.

▶템즈 강변을 보행로로 만든 게 핵심
여왕 즉위 25, 50주년 기념 보행로라고 해서 거창하게 신작로를 낸 건 아닙니다. 그래서 더욱 놀랍습니다. 주빌리 워크웨이에는 주빌리 가든이라는 기념 정원을 제외하곤 새로 세운 도시 조형물이나 시설도 없습니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레스터 스퀘어가 부분적으로 보행자 전용길이 된 것을 제외하곤 자동차 도로를 잡아 먹은 사례도 들리지 않고요.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템즈 강변이 걷는 길로 개량됐다는 점입니다. 강변의 대부분은 걷기 전용길이거나 자동차 도로에 붙은 보도가 됐습니다. 보행은 물론 휠체어도 지날 수 있게 모든 턱을 없앴습니다. 이 과정을 거쳐 웨스터민스터 궁 서쪽의 람베스 다리에서 런던 동부 관광지인 타워 브리지에 템즈 강변이 완전히 하나의 보행로로 이어졌습니다. 문득, 자동차에 내준 우리 나라 강변길을 보행자가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영국 걷기협회 격인 ‘렘블러스’가 펴낸 ‘워킹 인 런던’ 리플렛의 표지. 템즈강변 걷기 길 사진이 나와있다. 비영리 재단인 이 협회는 이 작은 리플렛을 1.5파운드(약 3000원)에 팔고 있다. 협회 본부는 이같은 수익 사업과 기부금 확보가 주요 업무다.

▶휠체어도 다닐 수 있게 편하게, 안전하게~
사실 주빌리 워크웨이는 보행을 편하게 하기 위해 바닥에 우레탄을 깐 길은 더더욱 아닙니다. 원래 있던 길을 연결해 ‘걷기 길’로 명명한 뒤 이를 실제로 걷기에 불편이 없도록 개선하고 표지판을 붙인 정도지요. 그러니까 걷거나 휠체어가 지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둔턱을 없애고, 길이 계단으로만 이어지면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경사로로 바꾸든지 주변에 별도로 작은 회피로를 내는 게 가장 핵심입니다. 거기에 보행자용 방향 표지판과 주빌리 워크웨이를 알리는 패널을 바닥에 붙인 게 거의 전부입니다. 50주년 때 주빌리 워크웨이와 관련한 주요 행사가 벌어진 곳에는 이를 알리는 황금색 판을 붙였습니다. 모두 그 근처에 있는 조직이나 단체가 기증한 것입니다.

▶따라 걷기만 하면 런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노선은 런던의 주요 역사적 장소와 관광 명소를 연결하도록 아주 세심하게 설계됐답니다. 맥스 니컬슨이라는 유명한 인물이 이를 지휘했습니다. 그의 주빌리 워크웨이 노선 설계 철학은 따라 걷기 쉽고 런던을 아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누구라도 주빌리 워크웨이를 따라 걸으면 런던 시내의 엔터네인먼트, 의회, 의식, 그리고 실외 활동을 경험하고 수많은 역사 유적, 또는 현장을 만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파노라마 안내판 설치는 화룡점정!!
1980년부터는 파노라마 안내판이 하나씩 생겨났습니다. 워크웨이 자체를 안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주변의 주요 건물의 정체도 함께 밝혀 관광 안내판 구실을 하도록 한 것이지요. 처음엔 주로 앞이 탁 트인 강변이나 다리에만 부착됐으나 차츰 런던 전역으로 확산했습니다.

▶25년 동안 계속 개선, 또 개선!!!
특이한 점은 주빌리 워크웨이 건설이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78년 관청과 협조해 이 길을 관리하기 위한 민간 조직인 주빌리 워크웨이 재단이 생겼습니다. 이 재단이 앞장서서 관리는 물론 길을 개량하고 확장하는 작업을 여왕 즉위 50주년까지 계속 한 것입니다. 우선 그동안의 런던 스카이 라인의 변화에 맞춰 파노라마 안내판이 업데이트 하거나 교체했습니다. 즉위 50주년에 맞춰 옛 시청인 런던 길드홀 근처의 것을 포함한 몇몇 파노라마 안내판이 금색으로 바꾸었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즉위 25주년을 실버 주빌리라고 하며 50주년을 골든 주빌리라고 하기 때문이지요.

(계속)

→템즈강변 다리에 부착된 파노라마 안내판. 1977년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25주년, 즉 실버 주빌리를 기념해 ‘실버 주빌리 워크웨이’가 생긴 뒤에도 시민단체들은 이 길을 꾸준히 다듬고 보살폈다. 길 안내와 관광 안내를 겸한 이 안내판도 그 가운데 하나다. 다리에서 보이는 모든 주요 건물의 정체를 밝히고 있다. 강 건너에 보이는 것이 밀레니엄 행사를 기념해서 설치된 ‘런던 아이’라는 이름의 회전 전망차다.

채인택 기자(중앙일보 국제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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