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살신성의”/암으로 타계 서울대 이광호박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해부학교수 “내몸 해부하여 의술 연구를”/후학들 뜻 새기며 눈물의 집도/장기 정밀분석 암의 경로 추적/기증한 안구는 두 사람에 이식
평생을 해부학 발전에 몸바쳐온 한 원로교수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신체를 후학들의 의학연구에 써달라고 기증했다. 서울대 의대 해부학 교실 이광호교수(61·전 서울대 의대학장)가 25일 오전 10시 서울대병원에서 급성신장암으로 별세했다.
이 교수의 신체는 이날 낮 12시30분쯤 본인의 희망에 따라 병리학과 지제근교수팀의 집도로 해부가 실시됐으며 암세포가 침범하지 않은 이 교수의 각막은 이날 오후 4시 원추각막 증세로 고도근시를 앓고 있는 배모씨(30) 등 두명에게 이식됐다.
해부가 진행되는 현장에는 장남 호준씨(33·교사)가 입회해 눈시울을 붉히며 울음을 참는 모습이었다.
의과대학 교수가 학문발전을 위해 자신의 신체를 해부용으로 제공하고 장기까지 기증한 것은 이 교수가 처음이다.
이날 후학들은 소설 『동의보감』에서 허준이 자신의 스승이 의술발전을 위해 남긴 시신을 눈물과 함께 해부했던 것과 똑같이 그의 「살신성의」의 뜻을 기렸다.
병리학 교실쪽은 이 교수의 사망원인이 암이기는 하지만 암이 최초로 발생한 장소와 종류가 불분명한 상태여서 장기의 조직표본,입원기간중의 증세를 정밀 분석해 암의 발전경로를 추적할 예정이다. 이 교수가 자신의 신체를 기증하게 된 것은 최근 의과대학 해부실험용 시체 공급이 급격히 줄어들어 실습에 차질을 빚게 되자 지난 1월 서울지역 9개 의과대학 해부학과 교수 34명과 함께 시신을 해부용으로 내놓기로 결의한데서 비롯됐다.
이 교수는 이때부터 「의과대학에 신체를 기증키로 했으니 불의의 사망때 병원·대학쪽에 연락바람」이라는 내용의 기증 유언서를 신분증과 함께 늘 지니고 다녔다.
이 교수는 지난 55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64년 모교에 전임강사로 몸담은뒤 서울대 학생처장·대한해부학회장·서울대 의대학장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이사장을 함께 맡는 등 스포츠의학의 대부역도 해왔다.
이 교수의 유족으로는 부인 김익순여사(57)와 호준씨 등 1남2녀가 있다.
이 교수의 영결식은 27일 오전 8시 서울대 의대 함춘원 앞에서 거행되며 천안공원묘지에 안장된다. 760­3331(서울대 해부학교실).<오영환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