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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생존이 우선" 美에 무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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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미국이 테러지원국으로 압박해 왔던 리비아가 결국 정권 생존을 위해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선택했다.

◇생존과 경제개발=리비아의 선언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해 한계에 도달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중론이다. 미국은 1996년 이후 리비아와의 무역을 전면 금지해왔다. 여기에 한 해 리비아 석유산업에 2천만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외국 기업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했다. 리비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내 산유량 7위다. 따라서 미국의 제재는 리비아 경제에 족쇄로 작용했다.

리비아는 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발생한 팬암기 폭파사건의 피해 보상 문제를 지난 8월 타결했다. 유족들에게 27억달러의 거액을 지불키로 약속한 것. 그러나 이후 유엔의 경제제재 조치는 해제됐지만 미국은 여전히 제재 조치를 거두지 않았다. 압델 라흐만 샬캄 리비아 외무장관도 "우리는 미국.영국과 관계 개선을 원한다. 그것이 우리 국민의 이익이기 때문"이라고 알자지라 방송에 밝혔다.

이라크전을 계기로 떠오른 정권 생존 문제도 원인이었다. 카다피 원수의 아들 시이프 알이슬람 카다피는 20일 CNN에 아버지가 축출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의 다짐을 받고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선언했다고 밝혔다. 한편 이란과 리비아는 21일 리비아의 이번 결정에 '만족'을 표하고 이스라엘도 리비아의 선례를 따라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2백여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물밑 외교전=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 포기는 '생존의 위협'이라는 상황 외에도 9개월간 극도의 보안 속에 진행된 외교 협상이 작용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3월 이라크전이 발생하자마자 카다피의 최측근이자 리비아의 정보기관 총책임자인 무사 쿠사가 영국 정보기관인 MI6에 대량살상무기 포기 용의를 타진해왔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그 직후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 이를 논의했다. 이후 양국 정보기관과 외교관들의 접촉이 유럽과 리비아에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미국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대사인 반다르 빈 술탄 왕세자가 협상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지난 10월과 12월 초에는 리비아가 미.영 정보기관 관계자들에게 자국내 대량살상무기 개발지역 10여곳에 대한 조사를 허용했다. 결국 지난 16일 영국 외무부와 MI6 요원 등 4명과 쿠사가 지휘하는 리비아 대표단 4명이 6시간에 걸친 협상을 통해 '분명한 포기 선언'이라는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이틀 후인 18일 블레어 총리는 카다피 원수와 30분간의 전화 통화 끝에 이를 확인했다.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은 "리비아의 이번 결정은 수개월간 진행됐던 끈질긴 외교의 결과"라고 자평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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