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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손학규에게 햇볕 특별과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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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20일 오후 서울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 자택을 예방해 김 전 대통령에게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김대중 전 대통령(DJ)과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햇볕정책을 공통분모로 삼아 교감의 폭을 넓히고 있다.

소식통들은 23일 "손 전 지사가 동교동으로 DJ를 찾아간 20일 햇볕정책을 주된 화두로 삼았다"고 전했다. 당초 30분간으로 잡혔던 면담 시간은 70분 만에야 끝났다. DJ는 '햇볕정책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손 전 지사에게 자신의 국정 경험을 예로 들며 햇볕정책의 맥(脈)을 설파했다고 한다. 일종의 특별과외를 해 준 셈이다.

▶손 전 지사="남북이 소통하는 (햇볕)정책이 우여곡절이 있고 진행도 더딘 적도 있지만, 이만큼 진전되어 큰 보람을 느끼시겠습니다."

▶DJ="나는 (대통령으로 있을 때 햇볕정책을 추진하며) 미국에 북한의 숨소리까지 알려줬어요. (한.미 관계에서) 이런 신뢰가 있을 때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고, 또 아닌 때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손 전 지사="그렇습니다."

▶DJ="독일이 통일할 때 강대국들이 반대했으면 됐겠습니까. 남한과 북한만으론 통일이 어렵습니다. 주변국과 평소에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DJ는 한.미 관계 등 주변 4강과의 원만한 외교를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대북 포용정책을 표방했지만 임기 내내 한.미 갈등설이 계속됐던 노무현 정부를 언급하지 않은 채 대미 외교를 각별히 주문한 것이다.

◆"국민 무시하지 말라"=DJ는 이어 "정치인들이 잘못 판단하는 게 있다"며 민심 얘기를 꺼내 배석자들을 긴장시켰다. 그는 "(정치인들이)국민은 잘 모른다, 무식하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판단"이라며 "우리 국민은 현명하다"고 역설했다. 19일 독일 방문을 마치고 입국할 때 DJ는 "국민이 바라는 것을 해야 한다"며 범여권의 대통합을 촉구한 바 있다. 이날 손 전 지사에게도 "정치인들이 국민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 4.19 혁명이나 6.10 항쟁은 처음엔 청년.학생.지식인이 나섰지만 나중에 국민이 움직여 완성됐다"고 강조했다. 대화가 무르익자 DJ는 갑자기 손 전 지사에게 "올해 몇이요"라며 나이를 물었다. 손 전 지사가 "환갑입니다"고 답하자 "젊게 뛸 나이입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날 만남에 대해 "DJ가 손 전 지사를 범여권 주자 중 한 명으로 인정하기 시작했음을 보여 줬다"고 해석했다. 대북 정책에서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던 고건 전 총리와 달리 손 전 지사는 줄곧 햇볕정책을 부각해 왔다. 또 평양 방문에 이어 5.18을 전후해 광주에서 사흘이나 머무르며 호남 민심 잡기에 공을 들였다. 그런 손 전 지사에게 DJ는 햇볕정책을 조언하며 '당신을 지켜보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양측은 구체적인 정치 현안들을 얘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아직까지 '정치적 계승' 관계로 비춰지는 데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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