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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장돌뱅이' 외고 이사장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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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김포외고를 설립한 전병두 사장이 서울 청계천 자신의 가게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김현동 이코노미스트 기자

서울 수표동 11의7번지. 청계천 변 스무 평 남짓한 공구상 록스기계에는 특별한 사장님이 있다.

'청계천의 덩샤오핑(鄧小平)' 전병두(58) 사장은 맨주먹으로 시작해 수백억원대 재산가가 됐다. 38년간 공구상을 하며 제주도로 신혼여행 가느라 단 이틀 쉬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자"는 직원들 아우성을 모른 척하는 구두쇠다. 그런 그가 지난해 '사고'를 쳤다. 전 재산의 절반인 200억원을 들여 경기도 김포에 김포외국어고등학교를 세웠다. 이사장 전병두는 그래도 '장돌뱅이 전병두'가 더 좋다고 한다.

?장돌뱅이 전병두=록스기계 문을 들어서자 155㎝나 될까 싶은 키에, 불룩한 배(44인치)를 가진 전 사장이 서 있었다.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을 닮았다. 모습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는 공구상가의 '싸부'로 통한다. 이웃인 서명공구 장응철 사장은 "록스 출신 공구상 사장이 서른 명이 될 정도"라며 "아무리 더워도 땀 뻘뻘 흘리며 배달하는 건 전 사장뿐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 사장의 패션은 늘 러닝셔츠에 반바지다.

전 사장은 한국전쟁 통에 아버지를 잃었다. 경기상고에 들어갔지만 1년 만에 학업을 접었다. 생활고 때문이었다. 1969년 청계천에서 처음 발을 디뎠다. 리어카에 미제 장물을 올려놓고 팔았다.

장돌뱅이 전병두가 사업가로 거듭난 것은 75년부터 분 강남 아파트 건축 붐이었다. 돈을 긁어 모으다시피 했다. 꿈도 커졌다. "일본 회사의 절삭기를 수입했는데 가만히 보니 우리도 할 수 있겠더라고…." 성공 비결을 물었다. "나야 성실이지. 아무리 머리 좋으면 뭐 해. 거북이가 토끼 이기잖아요?" 그는 지금도 261번 시내버스를 타고 청계천과 집을 오간다.

?이사장 전병두=그가 김포에 외국어고를 세운 것은 목욕탕 덕분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목욕탕은 노다지 장사였다. 물만 콸콸 나오는 땅을 사서 20~30년 붙들고 있었더니 재산도 불었다. 98년 김포에 6000평짜리 대형 스파월드를 열었다. 당시 김동식 김포시장의 "외국어고를 유치하겠다"는 인터뷰 기사를 접했다. 그날로 "내가 김포에 있으니 한번 지어 보겠다"고 전화를 걸었다.

전병두 사장은 남동공단 공장 2000평을 팔았다. 멀쩡하던 공장이었다. 일생의 꿈이 담긴 공장이었다. 왜 학교였을까. "어렵게 살았으니까요. 더 배우고 싶은 한이 있었으니까요."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을까. "자식들에게 물려준다고 잘된다는 보장이 없잖아. 지난해 입학한 외고 학생들이 289명이야. 내가 앞으로 20년 산다면 여기서 판검사도 나오고, 기업가도 나오고…. 이런 보람이 또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세운 학교에 그는 일주일에 한 번 간다. 그것도 일요일 오후다. 전 이사장은 "학교 가봐야 훈수 둘 입장이 아닙니다. 골치 아픈 것만 가져와요. 이사장들 학교에서 돈 빼다 쓰고 감옥 간다는 거 옛날 말입니다. 지금은 국물도 없어요. 10원도 못 가져와"라고 말했다.

여건이 좋아지면 전문대든, 유치원이든 학교를 더 짓고 싶은 것이 '장돌뱅이' 전병두의 꿈이다.

이상재 이코노미스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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