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광장』|"미숙한 이념소설" 재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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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전후 한국소설중 유일하다시피 고전으로 대접받고 있는 최인훈씨의 『광장』은 미숙한 이데올로기 소설이란 비판이 나왔다. 중견문학평론가 조남현씨(서울대교수)는 최근 발표한 평론「광장」, 똑바로 다시보기」(『문학사상』8월호)에서 『남북의 정치체제와 이데올로기를 한바탕, 또 본격적으로 파헤치고 따져 박수갈채를 받았던 「광장」은 이제 시대변화에 따라 독자들의 차가운 반응을 감수해야 할것』이라며 소설로서 『광장』의 미숙한 부분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60년 발표된 『광장』은 분단이후 최초로 남북 양쪽체제를 동시에 다뤄 분단문학의 출발점으로 기록된다.
발표직후 『정치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였지만, 소설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였다』(문학평론가 김현)는 등의 찬사와 함께 화제를 불렀던 이작품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한해 1만권이상 팔리며 꾸준히 읽히고 있다. 단일작품으로는 가장 많은 비평적 조명을 받은 『광장』은 팬클럽 한국본부에 의해 92년도 노벨문학상 수상후보작으로 추천됐다.
조씨는 『광장』이 관심을 집중시킬수 있었던 이유로 ▲시대적으로 한발앞선 인물설정 ▲한국역사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진지하게 파고든 점 ▲소실은 허구이며 이야기라는 통념을 일거에 깨버린 점등을 꼽았다.
『광장』은 평지돌출한 것이 아니라며 그 예고지표로 조씨는 1954년 발표된 박영로의 단편 『용초도 근해』를 들었다. 한 국군 포로가 판문점을 거쳐 용초도로 수송되는 도중 바다에 투신한다는 이 작품은 주인공이 포로라는 점, 이루지 못한 사랑이 자살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 투신으로 끝을 맺는 점등에서 비록 최씨의 작품은 아니지만 『광장』의 예고지표로 볼수 있다는게 조씨의 주장이다.
또 최씨자신의 이전 작품인 『GREY구락부 전말기』『가면고』등과 『광장』을 비교분석하면서 조씨는 『이명준은 그 이전 작품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몽상가적 기질을 지니고 있으며 감상적이며 현실도피적경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같이 『추상적인 관념의 숲과 개론서 수준의 인식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주인공을 내세워 시대적 풍경화를 그리는 데는 별로 힘쓰지않고 존재·이념·사랑·역사·정치등의 개념에 대해 주관적으로 말하려던 작품이 「광장」』이라는게 조씨의 주장이다.
그러나 『주관적인 서술부분에도 도처에 미숙성이나 피상성, 또는 자의성이 엿보인다』며 조씨는 그 한 예로 작품 『광장』에 무수히 드러나는 단어 「광장」의 의미를 살폈다. 「인간의 광장」「정치의 광장」「문화의 광장」「경제의 광장」「만남의 광장」등 『필요치도 않은데 「광장」이란 말이 들어간 문장을 너무많이 삽입, 소설의 특징인 이야기성은 물론 논지의 일관성이나 체계성을 부여하는 데도 실패했다』는 것이다. 조씨는 또 『인간의 육체란 허무의 공간에 투영된 고독의 그림자일거다』『역사란 끝가는데를 모르는 욕정으로 학대받는 다산질여인의 아랫배 같은것』등 『광장』도처에 널린 제대로 공감할수 없는 경구적 표현에서 최씨가 「이야기꾼」보다는 「사변가」임을 알수있게 한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조씨는 『관념적 서술이나 에세이적 부분이 너무나 많은 「광장」이 에세이를 남기기 위해 스토리를 엮어간 것이 아닐까』하며 소설양식으로서의 『광장』에까지 의구심을 보냈다.
결국 4.19직후 잠깐동안 표현의 자유라는 터를 만나 산술돼, 이후 냉전시대에 분단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아온 『광장』은 『오늘의 독자들 앞에 이데올로기 소설로서만 얼굴을 내밀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릴수도 없는 고약한 운명에 놓이게 됐다』는게 조씨의 주장이다.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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