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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노 대통령의 잘못된 민주세력 미화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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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임기를 9개월 남겨둔 대통령이라면 역사의 무게를 느끼며 겸손하게 국정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5.18 기념사와 19일 무등산 산행에서 보여준 자화자찬식 민주세력 미화(美化)의 역사관은 그런 성숙과는 거리가 멀다. 10%대의 지지율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으로 30%대로 반등하자 오만과 편협성이 다시 고개를 드는가.

그는 기념사에서 "민주세력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군사정권의 업적은 부당하게 남의 기회를 박탈하여 이룬 것"이라고 매도했다. 반면 김대중.노무현 10년 집권에는 온갖 미사여구를 바쳤다. 지식기반.혁신주도 경제, 의심할 수 없는 3만 달러 시대, 자유와 창의가 꽃피는 사회, 대세가 된 평화주의, 상호존중의 한.미 협력관계… 모두 "민주세력이 이룬 성취"라 했다.

나라 밖 세상을 잘 몰랐던 대통령은 해외순방 때마다 세계 속의 한국경제에 감격하곤 했다. 한국의 그런 위상에는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이 기초가 됐으며 거기에는 개발독재형 국가자원 집중, 수출입국 경제정책이 커다란 기여를 했다. 이는 세계은행을 비롯한 세계의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개발독재의 비(非)민주성만을 부각시키고 그 효용성은 깎아내렸다.

1월 신년연설에서 대통령은 김대중 정부에 대해 "경기진작을 위해 부동산 규제를 풀고 가계대출을 방치"해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을 주었다고 비판했다. 그래놓고는 지난주 기념사에선 그런 실정은 가리고 '민주정권의 경제업적 미화' 대열 속에 슬쩍 집어넣었다. 민주-반민주라는 안경만 쓰면 4개월 사이에 시야가 이렇게 달라지는가.

'노무현 경제'는 일부 지표상 건강한 것처럼 보이긴 한다. 그러나 속은 다르다. 그간의 투자 부진으로 기업의 채산구조는 악화됐고, 1분기 개인파산은 지난해보다 2.5배 늘어나는 등 속병이 깊어지고 있다. 행정수도라는 위헌 공약과 연결된 행정도시.혁신도시.공기업 이전은 골칫덩어리가 될 수 있다. 평화주의라는 허구 속에 우리의 머리 위엔 북핵이 있다. 상호존중은커녕 한국에 대한 미국의 불신만 자랐다. 한.미 FTA의 물꼬를 텄지만 이른바 민주세력 간 갈등으로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남의 눈의 티끌보다 제 눈의 들보부터 빼고 역사를 바라보는 겸허한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