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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안긴 서옹스님 … 불교계 세대교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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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 13일 92세를 일기로 앉아서 입적했던 서옹 스님이 19일 평소 자신이 설법하던 우주의 영원한 품에 안겼다. 이날 전남 장성군 백양사에서 3만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행된 다비식에서 스님은 처음 그를 만들었던 한줌의 흙으로 되돌아갔다. 조계종 최고의 선승으로 꼽혔던 스님은 생전에 '인생은 등불'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잠시 밝았다가 꺼져버리는 등불에 비유한 것이다.

스님의 엄격한 수행정신은 유명하다. 화장실에서도 휴지 세칸만을 잘라 꼬깃꼬깃 접어 사용할 정도로 근검절약 정신이 몸에 밴 것은 물론 일제시대 단절된 위기에 놓였던 한국 불교의 선풍(禪風)을 진작하고, 선문(禪門)의 기강을 세우는 데 진력했다. 특히 올해는 고인이 생전에 교류했던 성철 스님이 입적한 지 10주년 되는 해였다. 서옹 스님은 평소 성철 스님의 사진을 곁에 두고 "저분이 나보다 몸이 좋았는데 일찍 가셨어"라며 아쉬워했다.


올 따라 유난히 많은 큰스님이 열반해 향후 불교계의 세대교체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스님만 해도 서옹 스님.서암 스님.월하 스님 세명에 이른다.

한국 조계종을 대표했던 세 스님은 한국 불교의 유구한 전통인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두고 참선)을 강조한 대표적 선지식이었다.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대처승이 우세했던 일제시대에 출가, 조계종의 독신.비구 전통을 복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이달만 해도 50여년간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했던 청화 스님,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정대 스님, 조계종 스님으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던 태고종 종정 덕암 스님, 조계종 원로의원 덕명 스님 등 1세대 선승들이 잇따라 입적했다. 사람의 운명은 세월이 결정하는 것이지만 한국 불교 선지식의 세대교체가 가시화한 것이다. 현재 생존한 고승으론 해인사 법전 스님, 봉원사 석주 스님, 화계사 숭산 스님, 수덕사 원담 스님, 동화사 범룡 스님 등이 있다.

2세대 선승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한국 간화선의 현대화.세계화 작업도 주목된다. 기존 참선법의 문제를 지적하고, 현대적 수행 체계를 수립하자는 것을 목표로 지침서 발간 준비가 한창이다. 달라이라마.틱낫한 등 해외 고승의 영향을 받아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다. 각화사 고우 스님, 축서사 무여 스님, 남국선원 혜국 스님, 상원선원 의정 스님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내년 하순께 결과물이 나올 예정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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