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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월요인터뷰

"29년째 걸어만 다니니 마음이 비워지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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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스님은 왜 걷습니까.

"사람은 직립 동물이죠. 걷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자동차를 타면서부터 사람들은 걷지 않으려 하죠. 그래서 생기는 게 성인병이죠. 짐승들도 위험을 느끼거나 먹이 사냥을 할 때만 뜁니다. 평소에는 걷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늘 '빨리빨리'죠. 뛰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걷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걷기도 수행입니까.

"물론입니다. 걷는 것은 '비움'을 뜻합니다. 한곳에 머물면 집착하는 마음이 생기죠. 아무리 해도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소유욕입니다. 그래서 수행을 통해 스스로 만족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걸을 때는 가진 게 모두 짐이 되죠. 인생이 길이고, 걷는 게 삶이죠. 가진 걸 놓을수록 삶도 경쾌해지는 법입니다."

"왜 걷는가"라는 물음에 원공 스님은 "그냥 걷는다"고 답했다. "산이 앞에 있으니 넘고, 개울이 앞에 있으니 건넌다. 걷는다는 것은 바로 자연과의 대화다"라고 했다. [사진=김상선 기자]

-스님의 짐은 무엇입니까.

"나는 옷 한 벌밖에 없습니다. 길에서 비라도 맞으면 숙소에 들어가 빨아서 널어 놓죠. 다음날 옷이 마르면 입고, 안 말라도 그냥 입죠. 걷다 보면 또 마르니까요. 옷이 더러워지는 건 괜찮아요. 수행자니까. 대신 마음이 더러워지면 안 되죠. 그건 쉽게 세탁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고 감이 없다'는 것은 마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까. 그런데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머물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등록'을 보면 조사들도 깨친 바가 다 다릅니다. 틀을 만들어 놓고 거기서만 말을 하면 다양성을 얻을 수 없습니다. 공부 본상에서 보면 이렇게 해도 좋고, 저렇게 해도 좋은 것이죠."

-29년째 걷고 있습니다.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합니까.

"예전에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걸으면서도 온갖 생각이 떠올랐죠. 그런데 요즘은 다릅니다. '그냥' 걸을 뿐입니다. 구름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흘러가나요. 자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숨을 쉬나요. 그냥 걸을 뿐이죠."

-스님은 6년간 무문관 수행을 했습니다. 무문관으로 들어가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웃으면서) 뭘 알았으면 안 들어갔겠죠. 그땐 뭘 몰랐으니 들어간 게 아닐까요. 하하하. 무문관 생활을 밖에서 보니 근사해 보이기에 들어갔습니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실제 무문관 생활은 어땠습니까.

"무문관에 앉아 있어도 마음의 변화가 수시로 일어납니다. 거기서도 끊임없이 마음이 움직이죠. 그러면서 6년 세월이 갔습니다. 당시만 해도 무문관은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 하나밖에 없었죠. 무문관 안이라고 특별히 다를 것은 없습니다. 세상에 법당 아닌 곳이 있겠습니까."

-그럼, 무문관 안과 무문관 밖은 어떻게 다릅니까.

"무문관 안에서도 창을 통해 해와 달을 봤습니다. 그리고 무문관을 나와서도 해와 달을 보고 있습니다."

원공 스님은 선문답 같은 말을 던졌다. 사실 무문관 생활은 살을 깎고 피를 토할 만큼 힘들다. 일반인들에겐 한 달, 아니 한 주일도 견디기 힘든데 원공 스님은 무문관에 들어갈 때 정한 기한인 6년 정진을 마쳤다. 엄청난 근기(根氣)다. 그 속에서 스님은 조그만 창을 통해 해를 보고 달을 본 것이다. 또 무문관을 나와서도 해와 달을 봤다고 했다.

무슨 뜻일까. 삼라만상 온 우주에는 불성이 꽉 차 있다. 없는 곳이 없다고 한다. 나무도, 해도, 달도, 흘러가는 자연의 질서가 실은 부처의 숨결이다. 그래서 원공 스님은 무문관 안에서 보던 달과 밖에서 보는 달이 둘이 아님을 말한 것이지 싶다.

-스님은 무문관을 나오자마자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다니고 싶었죠. 6년간 막힌 곳에 있었더니 다니고 싶더군요. 수행자에겐 앉는 것도 수행이고, 걷는 것도 수행입니다. 좌선과 행각, 둘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점이 없습니다."

-언제까지 걸을 생각입니까.

"내년이면 30년이죠. 30년을 채울 생각입니다. 거리로만 따진다면 우리나라를 스물아홉 바퀴 정도 돌지 않았을까요."

스님은 작은 배낭에서 지도책을 하나 꺼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형광펜으로 걸었던 길과 날짜가 표시돼 있었다. 어느 지역, 어느 동네를 물어도 술술 해설이 나올 정도였다.

-지금까지 총 몇 ㎞를 걸었습니까.

"저도 모릅니다. 처음 몇 년은 꼬박꼬박 기록을 했죠. 오늘 하루 걸었던 거리와 지명 등을 말이죠. 그런데 어느 순간, 그냥 걷게 되더군요. 이젠 아주 간단하게 걸었던 길만 표시합니다."

-걷는 데도 노하우가 있나요.

"자기 방식대로 걷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자신에게 편하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말이죠. 다만 신발은 발보다 약간 큰 게 좋습니다. 제 발은 280㎜지만 신발은 290~300㎜를 주로 신습니다. 걷다 보면 발이 붓거든요. 그래서 약간 큰 게 오히려 맞습니다."

-걷는 데도 리듬이 있나요.

"리듬을 주면 훨씬 덜 지루하죠. 열 걸음은 아주 느리게, 다음 스무 걸음은 좀 더 빠르게. 이런 식으로 말이죠. 또 뒤로 돌아서 걷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앞으로 걸을 때 안 쓰는 근육을 뒤로 걸을 때는 쓰게 되거든요. 신발도 가벼운 게 좋습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손해 본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

"인생이란 큰 틀에서 보면 모두가 '과정'이죠. 손해 볼 게 뭐 있나요. 이렇게 오고 가며 사람들도 많이 만나죠. 그게 제 삶이고, 제가 가는 길입니다. 오히려 걷는 게 자기 성찰에는 큰 도움이 됩니다."

-2002년에는 한.일 월드컵 개최 도시를 돌았더군요.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개최 도시 20곳을 돌았습니다. 모두 4000㎞에 달하는 거리였죠. 일본의 거리는 참 부럽습니다. 어딜 가든 사람이 다니는 길이 확보돼 있습니다. 지방의 작은 도시와 도시를 잇는 도로에도 양 옆에 인도가 따로 만들어져 있죠. 여건이 안 되는 장소는 한쪽이라도 인도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일본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도로는 어떻습니까.

"위험천만입니다. 저도 가급적 차도를 피해 다닙니다. 작은 길이나 산길로도 많이 다니죠. 그런데 피치 못할 때가 있습니다. 차도 외에 다른 길이 없을 때는 한 곁에 붙어 걷습니다. 사실 차도를 걸을 때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걷습니다. 밤에 숙소에 들어가서야 '살았구나'란 안도감이 들죠. 중국은 아무리 시골이라도 길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이 확보돼 있습니다. 자전거를 많이 타니까요. 한국만큼 인도에 인색한 나라도 없죠."

-어떤 도시가 걷기에 좋습니까.

"제주도와 경북 상주 정도입니다. 자전거 타기에도 좋고, 걷기에도 좋습니다. 일본에선 걸을 때도 참 편합니다. 안전하니까요. 한번은 일본 홋카이도에서 오전 5시에 걷고 있었죠. 그런데 아무도 없는 빨간 신호등 앞에서 경찰 순찰차가 서 있더군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스님은 길을 가면서 쓰레기도 줍는다고 들었습니다.

"목표 지역에 도착하면 일단 그곳의 100ℓ짜리 쓰레기봉투부터 삽니다. 그리고 길에서 보이는 쓰레기를 줍죠. 그걸 봉투에 담아 길가에 두면 가져가거든요. 자연이 바로 내 몸이잖아요."

-걷기에는 어떤 계절이 좋습니까.

"겨울은 나목이라 산 모양을 제대로 볼 수 있어 좋죠. 봄은 새로운 풀들이 나오고 꽃향기도 자욱하니 좋습니다. 여름은 아무 데나 노숙을 할 수 있어 좋죠. 가을은 아무리 걸어도 땀이 안 나서 좋죠. 사시사철, 걷다 보면 '날마다 좋은 날'이 아닌 날이 없습니다. 걷기는 몸에도 보약이고, 마음에도 보약입니다."

글=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원공 스님은 …

서울 도봉산의 미륵봉 아래 천축사가 있다. 이곳에선 두 차례 무문관이 운영됐다. 1차는 1966~71년, 2차는 72~77년이었다. 부처님의 6년 고행을 본떠 6년간 문 밖으로 나오지 않는 혹독한 수행이다. 밥이 드나드는 구멍 외에 출입문까지 봉쇄해 버리기에 '무문관'이란 이름도 붙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스님 100여 명이 무문관에 들어갔으나 6년을 채운 스님은 관응.제선.원공 스님 등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특히 2기에선 수십 명 가운데 오직 원공 스님만이 6년 수행을 채웠다고 한다. 이후 무문관 6년 수행자는 아무도 없다.

원공 스님은 79년부터 29년째 자동차를 안 타고 오로지 걷고 있다. 80~83년 1000일간 전국을 걸었고, 통일기원 180일 국토 순례, 이산가족 고향 자유 왕래 염원 220일 순례, 123일간 한.일 전역을 도는 환경과 평화를 위한 한.일 도보 대장정 등을 마련하기도 했다.

백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