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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중앙SUNDAY 인터뷰 전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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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05면

신동연 기자

-굉장히 바쁘시죠?
“(가방에서 수첩과 볼펜을 꺼내며)예, 항상 그래요. 창간을 며칠날 하신 거에요?”

-3월 18일, 두달 정도 됐습니다. 보신 적 있으신가요?
“있습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유일하게 우리가 일요일에 신문 안 나온 국가입니다.
“OECD 중에 유일하게 우리가 하고, 안하는 게 많아요.”

-바쁘실 텐데 중앙SUNDAY에게 인터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휴, 별 말씀을.”

-우선 저희가 일요일 신문이다 보니까 비교적 딱딱한 얘기보다….
“예, 여유있는 얘기들….”

-박 전 대표님 하면 많은 분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떠올립니다. 두분의 모습 중 가장 아름답게 기억되는 장면을 소개해주세요.
“학생 시절이었는데요, 부모님이 국빈으로 호주하고 뉴질랜드를 방문하신 적이 있어요. 제가 모시고 같이 갔는데 비행 시간이 좀 길잖아요. 어머니께서 바느질도 하고 그러셨어요, 비행기 위에서. 그런데 아버지께서 그 모습을 보시면서 스케치, 원래 그림을 잘 그리시거든요, 유화도 그리시고. 어머니 모습을 스케치를 해 어머니한테 보라고 주시니까 어머니가 ‘아, 내가 이렇게 못났냐?’ 그랬더니 아버지가 ‘그럼 다시 그리겠다’며 다시 스케치를 하셨어요. 어머니 목에 점이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목을 가리키며) 이상하게 저도 목에 여기 점이 있는데, 그 점까지 그리신 게 뚜렷이 제가 기억에 남아요. ‘영수에게’ 이렇게 사인을 해 주시고, 웃으시고 하며 단란했던 게 기억납니다.

-몇학년때였나요.
“제가 고등학생 시절이었을 거에요.”

-육 여사가 한센병 환자들을 많이 돌봤는데 어머님 모습 중 이것만은 꼭 닮고 싶은게 있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어머님은 참 거짓이 없으셨어요. 제가 뵙기에는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하시는가 감탄을 하는데도 항상 어머니는 스스로를 돌아보시며 부족한 점이 없나 이렇게 거울을 깨끗이 닦듯이 사시던 모습이 저한테는 백마디 말보다도 큰 교훈이 됐죠. 아, 인생은 저렇게 살아야되는 거다, 거짓없이. 또 어려운 이웃에 대한 배려도 그냥 가서 위로도 하셨지만, 어떻게 하면 자립하게 도와줄지 신경을 많이 쓰셨죠. 한센병 얘기도 하셨지만 그분들이 어떻게 자립할 수 있을까, 돼지를 보급해주고. 그것도 저에게는 큰 교훈이 됐죠.”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중 누구를 더 좋아했나요.
“저는 ‘어머니 아버지 다 좋아요’ 그래요. 제 자신이 부모님의 반반인데, 제가 저 자신을 부인할 수 있습니까? 또 세상에 자식이 어느 한 부모만 좋다고 그러는 사람 별로 없잖아요.”

-어느 분이 더 엄하셨나요.
“어머니가 좀 엄하셨죠.”

-야단맞은 적도 있나요.
“아단맞는다는 표현 자체가…. 어머니께 ‘선생님께 야단맞았어요’ ‘할머니께 야단맞았어요’ 그러면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야단쳤다고 하는 것은 우리 예법상 안된다’고 하셨어요. ‘걱정하셨다,’ 저는 지금도 그때 배운대로 써요. 어머님이 그렇게 걱정하고 그러신 기억은 별로 없지만 저는 그런 말을 한번 들으면 굉장히 깊이 가슴에 새겨서 두번 다시 똑같은 잘못을 안하게 노력했어요. 그래서 먼저 어머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여쭙고 했어요.”

-만약 부모님이 박 전 대표의 지금 모습을 보신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부모님께서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보시면 ‘힘내서 잘해라’하고 격려해 주실 것 같아요. 부모님은 우리한테 자립성ㆍ독립성을 키워주기 위해서 애쓰셨거든요. 누가 도와줄 수 있어도 혼자 해봐라, 제가 아주 어릴 때도 버스 타고 혼자 집까지 와봐라 하시고. 그런 식으로 고생도 해봐야 한다는 거였어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우리나라를 위해서 어떻게든지 우리나라를 편안하고 안전하고 잘사는 선진국 만들어보겠다는 일념밖에 없거든요. 그걸 부모님이 너무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제 마음을 잘 아실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잘해서 한번 국민들 모두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보라’고 격려해주실 것 같아요.”

-박 전 대통령 유고시 휴전선을 먼저 염려했다는 일화가 유명한데, 그런 개인적 시련 앞에서도 국가를 먼저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청와대에서 받은 교육 때문인가요.
“청와대 생활이라는 게 가족생활도 있지만 큰 부분은 항상 나라 걱정이에요. 나라에 일어나는 일, 외국과의 관계. 그런 손님들과 만나고. 아버지의 걱정, 아버지의 생각, 또 어머니가 불우시설에 갔다 오셔서 거기에 대한 얘기 하시고, 새마을 지도자 만났을 때의 느낌을 많이 얘기해주셨어요. 그걸 들으면서 국가 운영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나라에 대한 관심이 제 피와 살이 될 정도로. 대통령의 고뇌라는 건 이런 것이 있구나. 그걸 저도 관심을 가지고 살고, 우리나라 안보 문제도 그때는 지금과는 상황이 굉장히 달랐거든요. 대통령의 임무가 뭐겠어요. 우선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고, 나라가 안전해야 경제활동도 있는 거니까. 이런게 저의 관심사가 돼서 항상 얘기하는게 저도 체질화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대선 출마에 대한 동생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동생들은 제가 나라 일을 하는 거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힘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동생들에게, 가족ㆍ친지한테 도와달라고 권하기는 어렵겠지만 친지가 돕겠다고 하면 고맙게 생각을 하죠.”

-당내 경선과 본선에서 가족ㆍ친지들이 지원하겠다면 자유롭게 하라고 하실 건가요.
“고맙게, 감사하게 생각해요.”

-테니스나 단전호흡을 하셨는데 요즘처럼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어떻게 해소합니까.
“옛날에는 글도 많이 썼고요, 명상을 하거나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하면 스트레스가 좀 해소가 되세요?
“예.”

-명상은 주로 어느 시간에….
“차안에서 할 수도 있고요. 지금은 조용히 앉아서 시간을 갖는 일이 거의 없어요. 자기 마음 먹기에 따라선 집중만 할 수 있다면 차안에서도 가능한 거고 자기 직전에도 가능한 거고.”

-‘싱글’이라는 것에 어떤 장ㆍ단점이 있다고 보시는지.
“단점이라고 하면 좀 외로운 거. 장점은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나 열정을 전부 공적 업무를 위해서 다 바쳐서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 동안에, 제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 어려움을 많이 겪어서 제가 글도 많이 쓰고 책도 많이 읽었는데 그 때 제가 명심해야 할 것은 노트를 했어요. 일기도 쓰고. 제가 노트한 것이 노트북 몇권이 돼요. 제가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나, 정치인이든 뭐든 간에 지금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돌아볼 때 내가 이렇게 살아야겠다, 이런 인생이 바른 길이 아니냐, 제가 읽고 쓰고 한 거의 그대로 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글을 읽고 하는 게 영향을 미친다는 걸 느껴요. 인생이 하나라면 그 반은 습관과 가치관을 만드는 데 보내고 나머지 반은 자기가 만든 가치관과 습관대로 살 수밖에 없다는 말이 맞는거 같아요.”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인사의 기준이랄까.
“제가 당 대표 있을 적에도 당의 인사가 있었잖아요. 그 직책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분, 그것을 위주로 해서 제가 인사를 했습니다.”

-성품적 측면에서는요?
“신뢰할 수 있는 그런 성품. 아무리 똑똑하고 머리가 잘돌아가고 학위도 많이 받고 실력이 있다 하더라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해관계에 따라 쉽게 마음이 변한다면 그거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같이 일하려면 우선 서로 믿을 수 있어야 하니까 그런 것도 중요하겠죠.”

-현재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십니까.
“그런 면이 있지요. 아직도 개선할 부분이 있는데, 정치권으로 얘기하면 제가 10년전에 들어왔는데 그때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랄까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많이 변했어요, 정치권도. 지금은 ‘여성이기 때문에 약점이구나’ 느낄 때는 있지만 여성이라 불가능한 것은 없습니다. 21세기에도 여성이냐 남성이냐 한다는 것은 좀 시대에 안 맞는 얘기고. 전세계적으로 대처 수상이나 메르켈 총리, 골다 메이어 여사라든지 엘리자베스1세, 얼마나 나라 위해 일 잘하고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습니까. 엘리자베스 1세 같은 경우는 1천년, 지난 세기의 가장 훌륭한 CEO라는 평가까지 받잖아요. 그런 것을 볼때 여성이냐 남성이냐가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의 가치관, 사람 됨, 그런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지난해 지방선거 유세 기간 중 당했던 테러의 상처는 어떤 상태인지.
“수술을 잘해주셔서 일상생활 하는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5월 20일이네요. 1년이 되는게.”

-성형은 완전히 끝났나요.
“6개월을 보자고 하셨어요, 의사 선생님이. 안좋게 되면 (수술을) 다시 해야 되는데, 수술을 잘해주시고 또 제가 낫는 힘이 강하답니다, 말씀에 의하면. 그래서 6개월 지난 후에 수술 안해도 되는 걸로 됐어요.”

-테러 당시에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조금 지나니까 통증이 막 오고, 얼굴이 막 이렇게 벌어지…이렇게 자세한 얘기까지 하면 듣기에 끔찍하실텐데 (두손으로 오른쪽 뺨을 감싸고 얼굴을 찡그리며) 너무 얼굴이 크게 갈라져서 수박 쪼개지듯이, 한손으로 잡아도 감당이 안됐어요. 자꾸 벌어지는 걸 제가 감당을 할 수가 없었어요. 사진 보면 이렇게 두손으로 꼭 잡은 게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얼굴이 벌어지는 걸 제가 감당할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의사선생님이 지혈을 잘했다고, 지혈을 못했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하셨죠.”

-그때 상처가 기적적으로 치명적인 부위를 빗겨가서 역설적으로는 행운이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수술대 위에 이렇게, 그러니까 침대죠, 이동 침대. 거기 누워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머니도 테러로 흉탄에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테러로 돌아가셨는데, 나까지 이런 테러를 당한다…당했다. 이건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 도대체 어떤 것이냐,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죠. 그러나 병원 문을 나서면서는 제가 그렇게 생각했어요. 간발의 차이로 나는 죽을 수도 있었다. (굳은 얼굴로 앞쪽을 응시하며) 조금만 더 상처가 깊었으면 저는 이세상 사람이 아닌데 이미 한번 죽은 목숨인데 덤으로 사는 거 아니냐.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제가 병원 문을 나섰죠.”

-간혹 ‘공주’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뭐, 공주라는 말 자체가 뭐 나쁜 단어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30년이 넘었는데 지금까지 공주라고 그러니까…뭐 감사하다고 해야되겠죠.(이날 인터뷰 중 가장 크게 웃음)”

-‘가족이 곁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실 때는 언제인가요.
“지금은 내가 꼭 가족을 갖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두 손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오히려 우리나라에 많은 가족들이 살잖아요. 교육도 시키고 일자리도 얻어야 하고 그러는데 (그런)가족들이 행복하게 사는 걸로 제 행복을 삼으려는 생각이지 제가 지금 가족을 따로 갖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청와대 나와서 18년간 마음 고생을 상당히 많이 하셨다는 글도 쓰셨는데 그 시절에 어떤 마음 고생을 하셨나요.
“적혀있는 그대로고요. 아이구 내가 왜 태어났냐, 그런 거 원망하면 안되는데 너무 힘드니까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이런 고통을 몰랐을 건데…막 그런 생각까지 하고 그랬죠. 진짜 인생의 고통이랄까, 저 바닥까지 갔다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 제가 정치도 하고 활동하면서 느끼는 것은, 고생을 일부러 그렇게 사서 할 사람이 없죠. 누가 고통스럽게 그러겠습니까. 그러나 운명적으로 거기 던져졌으니 벗어나려 발버둥도 치고 어떻게 하면 내가 극복할까 자꾸 생각도 많이 하는 거 아니에요? 그때 그 어려운 시절이 나한테는 많은 공부가 되지 않았겠나, 지금 정치하는데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고민할 때 화두를 하나 잡았다면 어떤 건가요.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절은요,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 시절이라고 생각해요. (옷을 빨듯 두 손을 비비며)빨래를 막 하듯이.”

-요가로 치면 카르마(업)?
“그렇죠. 이 세상에 번쩍거리는 것도 있고, 부귀영화도 있고, 소위 인간들이 추구하는 좋은 게 많이 있을 거 아녜요. 높은 자리…. 그런데 하나도 그게 매력이 없어요. 가치가 없어요, 전혀. 마음의 평화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양심이 편해야 된다, 그러려면 자기가 자기를 돌아봤을 때 떳떳하고 올바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르게 사는 게 지혜다…. 다른게 지혜가 아니고 불구덩이, 어른들은 이게 만지면 뜨거운지 아니까 안하잖아요. 그러나 아기들은 뭔지 모르니까 하다가 데잖아요. 마찬가지로 지혜로운 사람은 악이라든가 거짓말이라든가 그런 나쁜 데 손을 안 댄다, 그게 결국 자기에게 고통이 되니까. 결국은 자기가 자기를 돌아봐서 떳떳하고 가책이 없고 올바르고 그런 것이 가장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냐, 그 나머지로 자기에게 오는 행복이나 여러가지 것들은 다 덤이다, 자기가 그것만 확실하게 지키고 있으면 이건 정말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이다…. 저는 권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아요. (고개를 가로저으며) 권력의 무상함이라든가, 권력의 속성이라든가, 이거 저만큼 아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그래서 그런 거에 제가 집착도 안하고 마음에 평화를 얻었어요. 바르게 산다는 게 제일 가치있는 것이고 나머지는 부수적인 거다, 이런 신념이 확실해졌죠. 그래서 정치도 그렇게 해요.”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요.
“(두손을 올려 연주하듯 손가락을 움직이며) 국민학교(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배우러 다녔어요. 조금 배웠죠 옛날에. 혼자 즐기면서 치다가 최근에는 잘 못쳐요, 시간 별로 없어서.”

-즐겨치는 곡이 있습니까?
“꽃노래라는 게 있습니다. 또 피아노로 동요 치는거 좋아해요. 노래도 부르고.”

-어떤 동요인가요.
“너무 오래된 거라서 우리 어린이들은 지금 모를 텐데, ‘둥근 달’이라든가, ‘과꽃’이라든가.”

-강아지를 꾸준히 키우시는 것같습니다. 이름이….
“진도개요. 봉달이, 봉순이.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항상 키웠어요. 전에는 스피츠를 키웠었고. 그런데 봉달이, 봉순이가 새끼를 많이 낳아서 전국적으로 분양을 해 지금 전국에서 잘 자라고 있어요. 이름을 우리 태극기를 따서 건ㆍ곤ㆍ감ㆍ리ㆍ청ㆍ홍ㆍ백으로 지어서, 분양 받은 분들이 서로 소식도 전달하고.”

-먼 훗날 유언장을 쓰신다면 상속인을 누구로 꼽으실는지요.
“저 아직 그런거 생각 안해봤는데요.”

-조카를 상당히 많이 좋아하시는 거 같은데요.
“예...(웃음)”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시는지요.다음 번 대통령이 꼭 해야할 일은 무엇이며 어떤 덕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지금 여러 분야가 잘못가고 있는게 많거든요. 그런 잘못된거 비정상적인거 이거 다 바로잡아서 좀 국민들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잘사는 선진국을, 선진한국을 꼭 만들고 싶다는 꿈 때문에 그러는 거구요. 다음 지도자가 꼭 우리나라를 위해서 해야될 일이라면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경제 교육 사회 문화 이런 모든 분야에 제도화, 규범 이런 것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끌어올려서 이제는 세계를 상대로 우리가 살아야 되거든요. 교육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문화 뭐 모든 분야에서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거. 그런 미래형 정부가 되는 거. 그게 다음정부가 해야 될, 우리가 또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규제를 풀어야 된다, 뭐 줄푸세, 줄이고 풀고 세우자 하는 운동을 벌이는 것도 다 그런 맥락이거든요. 그래서 다음 정부에서는 매년 5+2%. 합해서 7%의 경제성장을 해서 5년 동안 300만개 일자리를 만들고, 5년 지난 후에는 일인당 국민소득 3만불이 넘는 그런 선진국으로 진입을 해야 한다. 그런데 5+2는 5프로는 지금의 잠재성장률이고, 2프로는 국가 지도자 몫이다. 지금 너무 법을 제대로 안지키고 공권력이 땅에 떨어지고 이래서 1프로씩 매년 달아나고 있다. 또 규제가 너무 많아서, 쓸데없는 규제로 인해서, 외교역량의 부족으로 달아나는 것이 또 1프로. 그럼 이것만 해도 2퍼센트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국가지도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거 2퍼센트는 충분히 달성할 수가 있다. 그래서 제가 7% 얘기하는 것이구요. 그렇게 되려면 지금 나라도 많이 흐트러져 있으니까 그럼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잖아요. 지금 이시대에 나라를 살릴 수 있는 힘있는 강력한 리더십은 어디서 나오느냐. 이것은 근육에서 나오느 것도 아니고, 무슨 돈을 많이 갖고 있어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국민의 강력한 신뢰에서 나온다. 신뢰받는 리더십이야말로 가장 강력하다. 그럼 신뢰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국가지도자가. 나 믿어라 외친다고 국민들이 믿겠어요. 지도자 자체가 부정부패 하지않고 확고하고 깨끗하게 돼야되고, 그 다음에 헌법이라든가 원칙, 이것을 확실하게 지켜줘야 한다. 그래야 믿을수가 있지. 부패한 사람이 더 성공하고 법과 원칙 안지키는 사람이 더 성공하면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어요. 그렇게 될때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있고, 국민이 정치지도자와 나라를 신뢰해야 국민 화합이 가능하다. 그래서 한마음이 될 수 있다. 화합이 되어야만 우리도 다시한번 도약하자고 국민마음이 모아져서 선진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내 경선 룰을 둘러싸고 큰 풍랑이 지나갔습니다. 앞으로도 세부 룰을 정하는데 의견차가 예상됩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느낀 소회를 한 말씀 해주십시요.
“이제 저는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당의 앞날을 위해서 원칙과 약속이 어쨌든 이번에 지켜졌다는 것은 굉장히 다행스런 일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며칠간 당이 혼란스럽긴 했지만 이것은 두고두고 우리 한나라당을 위해서 다행스럽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렇게 정해진 원칙과 약속을 지키면 뭐 그것갖고 분란이 나고 싸울 일이 없죠. 원래 우리 경선룰은 6월달 4만이었어요. 그리고 2-3-3-2. 이거는 당원들이 오랫동안 거쳐서 만든 것인데, 그걸로 모든 경선을 해왔거든요. 새삼스러운게 아니고. 아무도 이의제기 안하고 무조건 그 룰은 따른다고 하니까 그거갖고 그동안 불만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것을 고치려고 하니까, 이거 숫자 늘이자, 시기 조정하자하니까 이거갖고 싸움하는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숫자 20만으로 늘이고 제가 합의를 해줬거든요. 그럼 그건 약속인데 거기서 끝나는 것도 아니고 또 여론조사 퍼센테이지를 뭐 100%하자, 이렇게 또 이의제기가 들어오니까 또 이거가지고 한참 소란이 있었는데 어쨌든 이번엔 그거가 마무리가 됐니까 이제는 합의된 것과 나머지는 전부 기존 원칙에 따라서 하고 하면 그러면 뭐 더이상 이거 갖고 혼란스러울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검증을 두고 ‘후보간 검증은 안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여기에 대한 생각과 검증에 대한 기본 인식은 어떠신지.
“저도 후보중의 한사람이거든요. 저도 검증의 대상이지 제가 주체는 아닙니다. 그것은 당이나 언론이나 이런데서 앞으로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대상이다... 그런데 검증은, 뭐 다른 검증이 필요하냐 할때 저는 필요하다고 했어요. 거기 검증이 필요하다에 제가 찬성한 이유는 우리 한나라당이 세번이나 눈물을 흘릴 수는 없다. 그래서 거를 것은 우리가 걸러서 정말 본선에 확실하게 경쟁력을 갖고 우리가 응해야 될 것 아니겠느냐. 이건 당만의 문제도 아니고 국민 염원의 염원이 담긴 문제고, 나라의 운명이 걸린 문제니까 이번에는 실패해선 안된다. 그런 차원서 찬성한 것이고. 또 개인의...후보의 정책이 잘못됐다든지 , 후보의 개인문제, 후보의 이념 이런 문제로 또 실패한다면 이건 큰일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 실수 없도록 하자는 뜻에서 찬성한 것이죠. 제가 만약에 공당의 후보 검증하는 일이 필요합니까라고 여쭤봤을때 뭐라고 답하시겠어요.”

-예, 검증은 뭐 필요하죠.
“예. 지금 그렇게 대답하시면요, 다른 진영에선 네가티브 한다고 그럽니다. 저는 검증이 필요하냐고 해서 저를 포함해 공당의 후보는 당연히 그걸 통과해야되는거 아니에요 이렇게 말했을 뿐인데, 아무 검증한것도 없는데 검증하자면 네가티브다 한다는 것은 검증 하지 않곘다는 것도 똑같은 것 아니겠어요. 검증과 네가티브는 다릅니다. 네가티브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막 상대를 흠집내기 위해 하는거거든요. 예를 들면 뭐 저에 대한 불법 씨디, 뭐 유인물 같은 거 막 의원회관에 뿌렸다는데, 그런게 네가티브죠.”

-그거 보셨나요?
“예, 좀 봤어요.”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아이, 뭐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 시장 측 참모 분이 우리 쪽에도 박대표 관련 증언 제보가 무수하다는 데요.
“그러니까 그런 것을들 다 확인을 해서 본선에 경쟁력이 있는 그런 후보를 우리 한나라당이 내서 이번엔 꼭 국민들께 약속했듯이 정권교체를 해야되는거 아니냐는 거죠. 그런 걸 위해서 검증하는거 아니겠습니까. 지금 뭐, 검증 필요하냐 그래서 아, 그건 우리 당이 승리하기 위해서 누구나 거쳐야 되는거 아니냐, 필요하다고 한 거 외에 뭐 검증한 것도 없어요. 또 검증은 캠프나 개인이 할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제가 진작부터 그건 당에 맡길 일이다. 당이 알아서 할 일이다, 또 당에서도 검증위원회를 만들어서 한다고 하니까 그건 뭐 당이 할 책임이지, 제가 할일은 아니거든요, 후보가 할일은 아니고. 당에서 잘 알아서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런 입장이죠.”

-지난 대선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던 정몽준 의원이 최근에도 한나라당 후보와의 관계 때문에 화제가 되곤 합니다. 초등학교 동문이시고. 대표님과 정 의원 사이에 정말로 구체적인 협력 논의 같은게 이뤄지고 있는 건지.
“뭐 정책과 생각이 같다면 뭐 참 같이 할 수 있고, 또 어떤 분과도 같이할 수 있는데...별로 그거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가 되거나 진행된 것은 없습니다. 지금 현재로서는.”

-고건 전 총리,정운찬 전 총장이 모두 뜻을 접으셨습니다.두 분의 심정에 대해 대표님도 이해가 가셨는지요.
“참 두 분 다 훌륭한 분들 아니에요. 그래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그 두분은 다른 당보다는 우리 한나라당과 성향이 맞으시는 거 아닌가 평소에 생각했어요. 그래서 같이 손잡고 선진국을 만드는데 힘을 같이 합해서 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번에 두분다 사퇴를 하셨는데. 그걸 보면서 국민들이 지금 집권여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고 있는가를 보여준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집권여당쪽은 어떤 후보가, 뭐 이렇게 지지받는 후보가 없지 않습니까. 그럴 정도로 비정상적인 구도에요. 그리고 뭐 거의 여당이 없어진 듯한 그런 느낌도 들고, 이런 상황이 올 정도로, 이런 비정상적인 구도가 될 정도로 국민들이 여당... 집권당에 대해 등을 돌린 거 아닌가 그런 결과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2002년 5월11~14일 방북, 1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했습니다. 그 이후 북한은 미사일 발사, 핵실험을 하며 긴장을 고조시켰는데 그때 만나서 본 김 위원장의 모습과 그 이후 북한의 행동이 잘 일치가 되는지요.
“뭐, 그때 제가 개인적으로 느낀 것은 좀 화통한 성격이다 하는 그런 인상을 받았구요. 그다음에 제가 그때 가가지고 저는 이 북한 방문 과정, 또 결과 모든 것을 굉장히 투명하게 했어요. 그쪽에서 초청 의사를 밝혀옴에 따라서 제가 통일부에 신고를 했습니다. 이러이러한 내용으로 이러이러한데 가자고 초청이 왔다고 신고했습니다. 그래서 가서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한 내용이라든가, 합의한 내용이라든가 이런 것을 북한 다녀온 다음에 하나도 빠짐없이 통일부 장관에게 다 얘기했어요, 정부 당국에. 그리고 언론에 전부 공개를 했습니다. 이런 이런 대화를 나눴고 이랬다. 그렇게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해가지고 또 제가 통일부에는 이런 이런걸 합의를 했으니까 정부 당국에서 잘 추진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때 합의한 게 우선 우리가 아버지 세대에 이어서 2세로서, 그때 7.4 공동성명의 정신이 아직 실천이 안되고 있으니까 그걸 한번 열매를 맺도록 해보자는데 합의를 했고, 또 금강산, 붕괴위험 있다는 금강산댐 공동조사,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또 동해선을 연결해서 유라시아 철도를 연결하자는 것도 합의했고, 또 육이오때 행방불명된 국군포로 민간인 생사확인하는 문제, 또 통일 남북축구 그런거. 그게 상당히 됐습니다. 약속이 이뤄졌는데. 제가 정부 당국에 이런건 합의가 됐으니까, 제가 실천할 순 없잖아요. 잘 추진해보시라 했는데 안타깝게도 제대로 안된 부분이 있습니다. 뭐, 그 금강산댐 공동조사 하는건 북측에서 저하고 같이 공동조사하자고 해서 ‘그건 내가 할수 있는 일아니다’ 그래서 정부당국자끼리 하도록 연결도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북한이 핵개발까지 하고 갈데까지 가버렸는데, 저는 당대표로 있을때 대북정책은 교류도 좋고 대화도 좋고, 평화정착을 한반도에 시키려는 거 이거 좋다. 나도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공동발전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게 그렇게 되기 위해선 원칙을 가지고 대북정책을 펴야 된다. 이거는 상호주의 원칙에 의해야 되고, 또 국제 공조가 있어야 되고, 국민들에게는 투명하게 진행돼서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룰이 안지켜졌잖아요. 국제공조도 잘 안됐었고, 약속 안지켜도 우리는 무조건 감싸기만 하고, 핵개발 했는데도 감싸고. 그래서 결국은 이렇게까지 왔거든요. 그러니까 북한이 어떻게 행동하느냐도 문제지만 그것을 이 남쪽에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대북정책을 원칙을 가지고 이것도 굉장한 변수에요. 그래서 저는 원칙을 가지고 제대로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굉장히 안타까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핵심 공약으로 내놓고 있는 운하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전 시장쪽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비교를 합니다만.
“이런.... 경부대운하는 정치적인 판단보다는 전문적인, 전문가들의 견해, 의견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경부운하 얘기가 나온지 시간이 상당히 흘러가지고 전문가들이, 이게 경제적으로 타당성이 있느냐도 많이 토론이 있었고. 또 환경전문가들은 환경파괴의 염려가 있다 이런 얘기도 많이 했고. 그런 전문가들 의견을 전부 종합을 해서 볼때 이 경부운하는 경제타당성이 부족하고, 또 환경파괴의 가능성도 높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님 헤어스타일 옷차림 전부 관심거리인데, 헤어스타일-패션의 원칙, 철학은 뭔가요?
“저는 제가 가는 장소, 또 어떤 회합인가. 그게 공적인 건가, 간담회인가. 여러가지 다양하게 있잖아요. 제가 참석하는 곳이. 그게 거기 어떤 분위기에 어떤 차림이 가장 적합하고 맞을까 그걸 기준으로 생각합니다.”

-본인이 다 코디 하시나요?
“뭐, 거의 그렇죠.”

-헤어스타일을 만져주는 분이 있나요?
“제가 혼자할 때도 있고 누가 도와주실때도 있고 그렇습니다.”

-장시간 고맙습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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