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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의 '민주 세력 유능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노무현 대통령에게 광주는 각별하다. 2002년 대선 후보 경선 때 노풍(노무현 바람)을 일으킨 진원지였다. 그곳에서 노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를 통해 민주세력 무능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1월 31일 '참여정부 4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민주세력이 무능하다는 건 부당한 논리"라고 했다.

이날은 반박에 그치지 않고 '민주세력 유능론'을 전개했다. 노 대통령은 왜 민주세력 유능론을 들고 나왔을까.

청와대 관계자들은 범여권 후보들의 지지율이 한나라당의 '빅2'에 비해 낮은 이유로 '노무현 디스카운트'를 꼽는다. 정부가 실제 한 일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노 대통령은 또 연말 대선이 후보보다는 세력 중심의 대결 구도로 가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민주세력이 저평가된 상태가 해소되지 않고선 세 대결은 해보나 마나다. 민주세력 무능론에 대한 노 대통령의 반박은 이런 상황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이 같은 인식은 친노 인사들이 주축이 된 참여정부 평가포럼의 결성과도 맥이 닿는다. 포럼의 안희정 상임집행위원장은 최근 "평가포럼은 무능한 민주화 정부론에 맞서 싸울 것"이라며 "민주화 정부 10년, 참여정부 5년이 실패했다고 공격하는 한나라당에 맞서 싸우자는 사람이 우리 세력의 후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민주세력 유능론은 범여권의 후보가 대선에서 핸디캡 없이 한나라당 후보와 맞설 수 있는 판을 만들기 위한 논리인 셈이다. 노 대통령이 "민주.반민주 편을 갈라 서로 싸우자는 말이 아니다"고 했지만 한나라당 측이 민주 대 반민주의 이념 대결 구도를 되살리려는 노림수라며 경계하는 건 그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 같다. 행사에 참석한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앞으로 국민을 상대로 직접 소통에 나서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시장친화적인 학자와 전문가들은 문제를 제기했다. 고려대 경제학과 이만우 교수는 "노 대통령이 군사독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해 외환위기가 왔다고 했으나 오히려 외환위기는 사회 민주화가 한 원인이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선진화재단 박세일 이사장은 "김대중 정부와 현 정부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에 입각한 정책으로 경제성장을 둔화시켰다"고 비판했다.

노 대통령이 지역주의를 비판하고 나선 데 대해선 정치권의 비판이 많았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지역주의 회귀를 운운하면서 현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했는데 이는 김근태.정동영 두 주자를 중심으로 한 범여권 통합 논의에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라며 "동시에 한나라당을 지역주의 정당으로 매도하는 교묘한 여론조작"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김정현 부대변인은 "민주당은 동서화합을 위해 노 대통령을 대선 후보로 선출했던 당"이라며 "그런 민주당을 분당시킨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논평했다.

열린우리당 최재성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기념사가) 범여권을 겨냥했다기보다는 지역주의에 의존하려는 한나라당에 대한 경고라고 본다"고 말했다.

박승희.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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