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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3부] 가을(5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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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그림=김태헌

아빠에게 문자를 보낸 이유는 물론 고양이들을 내가 키우게 된 기쁨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험! 용돈을 좀 융통하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이유라는 이야기이다. 사료도 사야 하고 고양이 배설통도 사야 하고 엄마가 준 용돈은 이미 다 써버렸는데 겨우 고양이를 키우는 것을 허락해준 엄마에게 손을 내밀자니 좀 미안했다. 책이 생각보다 많이 팔리지 않아서 엄마는 막딸이 아줌마 월급을 제때에 주는 데에도 끙끙거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침 조회가 시작되기 전 뜻밖의 문자가 도착했다.

-새 동생들이 생긴 것을 축하한다…. 하교하는 길에 서점에 들르렴. 선물이 있단다. 그런데 걔들은 성이 뭐니? 내 생각엔 유씨였으면 좋겠는데.

즐거운 서점의 잭 다니엘 아저씨였다. 아저씨가 어떻게?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내 머릿속으로 조명탄 같은 빛이 직선을 그리며 쭈욱 그어졌다. 킥킥 웃음이 나왔다. 나는 시치미를 떼고 답신을 보냈다.

-고마워요. 아저씨, 그런데 걔들은 동생들이 아니라 제 딸들이에요. 그런데 유씨는 왜?

아저씨에게 다시 답신이 왔다.

-너희 집 삼국지 아니냐? 위씨, 오씨, 그리고 공명의 공씨까지 그러니 유씨만 있으면 되니까.

다니엘 아저씨는 역시 긴 말이 필요 없다. 이로써 나의 추리력은 맞아떨어진 것이다. 엄마가 호들갑을 떨며 팔뚝이 어쩌네 저쩌네 하며 나간 일도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쪼유는 책가방을 놓자마자 내 자리로 왔다. 아침에 등교하는 길에 공터에 들러봤는데 이미 고양이들은 사라져버렸다는 말도 전했다. 남은 두 고양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네 마리를 다 데려올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좀 아팠다. 나는 쪼유에게 고양이를 키울 때 주의할 점들을 들었다. 쪼유는 마치 어린 아이들을 먼저 키워본 엄마처럼 나를 가르치려 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우리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것 같다고 말하자 쪼유는 잠시 머뭇거렸다. 마치 우리가 만난 첫날 내가 쪼유에게 자신의 부모 이야기를 들을 때와 같은 표정이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상대방이 상처를 입지 않을까 하는 그런 배려이기도 했을 것이다. 쪼유는 조심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고 다시 물었다.

"너…괜찮아?"

"엄마가 남자친구 생기는데 내가 왜 안 괜찮아?"

내가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쪼유는 한참 생각하는 표정이 되더니, 약간 울 듯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엄마한테 이혼해도 좋아, 하고 말할 때는 그런 상황까지 생각해야 했던 거였니? 그리고 아빠한테는 새 여자친구가 생기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난, 그 생각까지는 못했어…."

나는 쪼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고등학생이 된 지금 엄마와 아빠가 이혼한다고 했다면 나도 쪼유와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니까, 말하자면 내가 익숙한 세계가 아니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걸 다르다고 말하지 않고, 대개는 틀리다고 말하기도 하니까.

"어릴 때 말이야. 어떤 독일 작가의 소설을 읽었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있었어. '세상에는 부모가 이혼해서 불행한 아이들도 많지만 부모가 이혼하지 않아서 불행한 아이들도 많다'나. 그 후에 참 많은 생각을 했었어."

쪼유는 나를 따라 다시 중얼거렸다.

"부모가 이혼해서 불행한 아이들도 많지만 부모가 이혼하지 않아서 불행한 아이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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