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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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올림픽을 치르는 국가나 도시는 다르다.
그러나 올림픽을 맞이하는 열기는 어느 국가, 어느 도시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또 올림픽의 장식이나 양태도 개최지에 따라 다른 색깔·다른 모양을 띠게 마련이다. 하지만 올림픽에 대한 느낌은 때와 장소, 그리고 피부색깔과 관계없이 동일하다.
4년전 이맘때, 생소하기 그지없던 「아시아 대륙의 끝」서울에 첫발을 디뎠을 때 올림픽의 도시 서울의 거리는 온통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출렁거렸다.
한국 태극기의 색깔이 그렇듯 이방인인 나에게는 「한국의 색」으로 다가왔다.
서울의 바통을 이어받은 바르셀로나는 이제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뒤덮여있다.
바르셀로나를 탄생시킨 지중해를 대변하는 색깔이다.
동양인에게 있어 지중해는 낯선 이역만리 대양쯤으로 생각되겠지만 제25회 여름 올림픽을 개최하는 이곳 바르셀로나인들에게 있어 지중해란 문화의 요람이자 생활의 터전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 취재를 위해 서울을 찾았던 이방인들이 받은 강렬한 인상은 적청의 원색이 절묘한 콘트라스트 속에 이뤄내는 조화말고도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친근감 넘치는 미소를 머금은 상모쓴 호돌이가 그렇고 수백년의 역사를 웅변하는 고색창연한 남대문과 대한문, 하늘을 찌를듯 높이 솟아있는 고층빌딩, 생동감 넘치는 서울시민들의 밝은 표정이 그러했다.
서울은 장구한 역사의 체취가 물씬 풍겨 나오는 과거와 함께 최첨단의 현대가 동시에 존재하면서 활기에 찬 인파들이 모여사는, 한마디로 살아있는 도시였다.
4년이 지난 오늘 바르셀로나를 찾는 각국 선수단과 올림픽 패밀리들은 호돌이가 그랬던 것처럼 코비의 따뜻한 영접을 받고 있다.
코비가 올림픽 마스콧으로 선정됐을때 「개(견)를 어떻게 올림픽 상징으로 내세울 수 있느냐」는 비난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코비를 앞세워 손님맞이에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장소와 시간, 그리고 사람이 달라졌을 뿐 4년전 서울과 지금의 바르셀로나는 마찬가지 상황이다.
서울올림픽 취재를 위한 두차례의 한국방문을 통해 인상깊게 느꼈던 것들로 넘실거리는 한강과 올림픽 전용으로 건설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각종 경기장·시설들을 빼놓을 수 없다.
잠실주경기장을 끼고 흐르는 한강이 올림픽을 계기로 되살아나고, 규모면에서나 장비면에서초대형·최첨단을 자랑하는 시실들은 다음번 올림픽을 개최해야하는 우리들에게는 부럽게조차 느껴지기도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바르셀로나는 모든 분야에서 서울과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낙후돼 있었다.
공항은 낡고 협소했고 호텔이라 해봐야 저급호텔이 고작이었으며 수만대의 교통량을 소화해낼 수 있는 변변한 도로도 갖추지 못했던 게 당시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올림픽개최도시선정 이전 70년동안 바르셀로나는 여러가지 국내의 정치적인 이유로 사회간접 자본에 대한 투자가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가 올림픽 개최를 희망한 것은 올림픽이라는 명분으로 낙후된 도시를 변모시켜보겠다는 구실을 찾기 위한 계산된 측면도 없지 않음을 부인키 어렵다.
이같은 의도는 예상대로 적중했다.
공항이 새로 들어서고 호텔이 과거에 비해 몇배로 늘어났으며 시원스런 순환도로가 2개씩이나 건설됐고 공단에서 배출되는 각종 오염물질로 죽었던 바다가 되살아났다.
이번대회에서 선수촌으로 사용되고 있는 포블레노우 지역은 당시 공단밀집 지역으로, 선수단들이 환호성을 지를만큼 시원한 선수촌앞 해변은 이들 공단이 뿜어내는 산업 폐기물로 발을 디딜 수 없을 만큼 고약한 냄새와 쓰레기들로 가득 찬 곳이었으니 바르셀로나가 올림픽을 계기로 얼마나 새롭게 발전했는지 우리 스스로도 놀랄 정도다.
물론 이같은 변모가 있기까지 밤낮없이 고막을 때리는 기중기 소음, 호흡기 장애를 일으킬 만큼 도시 전체를 휘도는 시멘트 가루와 먼지, 해마다 가중되는 세금 등 참기 어려운 고통들이 5년간 계속됐다.
또 파리나 런던·밀라노 등 물가가 비싸기로 유럽에서 손꼽히는 도시들 보다 높은 물가수준이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압박하고 있음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을 성공리에 치르기 위해 한국 국민들이 해냈던 것처럼 이곳 바르셀로나 시민들도 온갖 장애와 고통을 묵묵히 견뎌내고 극복했다.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서 열린 서울 올림픽의 전통이 지중해 연안의 바르셀로나로 면면치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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