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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없는 사건… 취재진이 수사리드/「정보사땅 사기」 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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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배후단서” 보도돼야 겨우 확인/발표전 백60개 질문 「도상훈련」/목수출신 김인수,18억받아 교회헌금도
3주 가까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정보사부지매각 사기사건」이 23일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의혹도 많고 화제도 많았던 사건.
취재를 맡았던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말많았던 사건에 얽힌 얘기를 모았다.
­6백60억원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돈과 군부대 땅,육군대령 출신의 현직 군무원,굴지의 보험회사,그리고 정치적 변동기 등이 얽혀 흥미와 의혹이 상승작용을 일으켰던 이번 사건은 검찰수사 결과 간 크고 허황된 사기꾼들의 사기극으로 결론이 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여운이 남는군요.
­예,마치 한편의 미스터리 소설을 읽고 난 느낌입니다. 검찰발표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제일생명이 실제 피해를 본 4백73억원의 행방이 확인된 것으로 발표되고 관련 인물들이 곽수열·박삼화씨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검거되거나 자수한데다 여러 의문점에 대해서도 검찰이 나름대로 설명해 의혹투성이였던 때와는 많이 달라진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배후에 대한 의심이 말끔히 풀렸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검찰은 수사발표로 모양은 갖추었습니다만 수사과정에서 배후부분에는 지나치게 소극적이어서 애초부터 선을 긋고 수사를 벌였다는 지적은 면키 어렵게 됐습니다. 정건중씨가 말한 청와대·안기부 관계자나 윤성식상무가 정보사부지 매각가능성을 알아봤다는 국방부 관계자 등 배후규명의 단서가 될 수도 있는 인물에 대해서 항상 언론보도후에 마지못해 확인하는 태도를 보였으니까요.
­배후와 관련한 의혹이 컸던 만큼 검찰의 고민도 컸겠지요.
­서울지검 고위간부들은 발표를 앞두고 사건의 구도를 짚어 가면서 설득력이 약한 부분은 보강하는 「도상훈련」을 반복했고 1백60가지 예상질문을 만들어 답변내용을 점검하는 등 검찰 역시 의혹부분에 가장 신경을 쓴 모습입니다.
­사건 자체가 관련 인물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돈의 흐름 등 전문적인 이해가 필요해 취재에도 어려움이 많았지요. 초기에는 단순 금융사고로 출발했던 사건이 차츰 상식을 초월한 사기수법들이 드러나면서 증폭되는 의혹과 함께 복잡해 더욱 그랬습니다.
­「현장」이 있는 사건도 아니고 대부분의 취재가 집요한 탐문과 추적,그리고 정밀한 추리의 연속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우리 취재팀은 ▲정영진씨의 강남연합주택조합 ▲정보사부지사기 매각자금의 사채놀이 ▲김영호씨의 안양군부대 땅 사기 ▲토지브로커 신준수씨의 관련사실 등 이번 사건을 푸는 핵심적인 내용을 잇따라 단독으로 파헤쳐 검찰수사를 리드해 나기기도 했습니다.
­검찰 수사관계자들도 중앙일보의 정확하고 앞선 보도에 감탄하더군요.
­그러나 그 과정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건관련자들은 「돈세탁」뿐만 아니라 「주소세탁」솜씨도 보통이 아니어서 주민등록상의 주소를 근거로 2,3군데를 거쳐야 가족 등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사가 진행된 검찰청사에서는 대형사건답게 치열한 취재경쟁이 벌어져 웃지못할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감추려는 검찰과 빼내려는 취재진들간의 신경전속에 수사기록이 「실종」되는 일이 벌어지자 검찰은 조사실 문을 꼭 걸어잠그고 여직원에게 복사를 시킬때도 「감시원」을 딸려보내는 등 보안에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죠.
­취재팀을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했던 문제는 역시 배후가 있느냐,단순사기냐의 문제였습니다. 범행수법이나 범인들의 주변,수사결과 등 판단 재료가 늘어나도 그 의문은 해소되기는 커녕 오히려 커질 뿐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범행대상 토지가 군부대땅인데다 이 분야의 전문회사가 피해를 봤고 범인들도 「한탕후 튀지않은」 비상식적 행태를 보인 점 등은 피해자든 피의자든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의혹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죠.
­성무건설의 실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범행후에도 인력과 설비를 확충하는 등 그저 한탕하기 위한 유령회사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정영진씨는 공채했던 한 직원을 『군공사를 해야 하는데 보안검열에서 지적됐다』며 해고시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범인주변과 행적중에는 일확천금을 꿈꾼 사기꾼의 냄새도 짙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수백억원을 주무른 정영진·정건중씨 등은 지난해 종합토지세를 한푼도 내지 않은 빈털터리였어요. 유명정치인 등과 찍은 사진을 갖고 자신을 과시한 수법 또한 3류급입니다.
­이같은 의혹속에서 검찰이 일찌감치 단순사기쪽으로 수사방향을 잡자 이를 비난하는 시민들의 전화가 빗발쳤어요. 정영진씨가 사무장을 맡아 결성한 강남연합주택조합 사무실이 있는 서울 역삼동 D빌딩의 관리인은 『검찰직원들이 들이닥쳐 중요 자료를 빼돌리면 안되니 빨리 나와달라』고 주문해 수사방향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었습니다.
­범인들이 하루아침에 거머쥔 거액의 사용 내용이 화제가 되기도 했죠.
­압권은 목수에서 명화건설 회장으로 신분상승을 한 김인수씨의 경우죠. 18억원을 받아 교회에 십일조헌금까지 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힐뿐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정건중씨 일당에게 땅을 팔기로 하고 계약을 맺었던 철원·예산 일대의 지주 37명이 계약금 4억7천만원을 횡재해 화제가 되기도 했죠.
­정영진씨는 강남 유흥가에서 하루저녁 팁으로 2백만원을 뿌리기도 해 K백화점 주인의 아들로 소문이 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정씨는 수사과정에서 TV내의광고에 인기탤런트 L씨와 함께 출연한 유명여자모델을 항상 동반해 다녔다는 소문이 돌아 검찰이 확인했으나 사실무근임이 드러났죠.
­범인들이 사취한 4백73억원이라는 돈은 한달에 30만원씩 저축하는 도시근로자가 1만3천년동안 모아야 할 규모니까 이번 사건을 접한 시민들의 심정은 찜통더위는 저리가라였을 것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관계기관이나 업체의 불성실한 태도를 놓고 비난의 소리가 많이 들리더군요.
국방부의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육군대령 출신의 현직 군무원이 주범으로 드러나고 군부대의 땅이 범행대상이 됐는데도 공조수사는 커녕 의혹에 대한 해명조차 충분치 않아 주변에서 말이 많았습니다.
­제일생명도 마찬가집니다. 기자회견과 검찰의 소환조사를 통해 개입사실을 전면 부인했던 하영기사장의 태도는 한국은행총재까지 지낸 공인으로서 취할 자세가 아니었다는 지적입니다. 하 사장의 태도는 배후설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빚어 한 개인의 명예와 체면보다 기업과 사회,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공인정신이 우리사회의 지도층에 얼마나 결여돼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아쉬움과 실망이 컸습니다.
­또 사건이 보도되기 하루전부터 제일생명에 대한 특별검사를 시작해 하 사장의 개입 등 상당수준의 조사를 진척시켰던 보험감독원은 『검찰이 모든 자료를 가져가 조사가 잘 안된다』는 등 연막으로 일관해 빈축을 샀습니다.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준 교훈을 다시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아직도 이런 어이없는 사기가 가능한 우리 사회의 구조는 우리 모두가 반성할 부분입니다. 또 사건 발생직후부터 증폭되기 시작한 배후에 대한 의혹이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검찰의 단순 사기발표에도 불신이 제기되는 사회의 불신풍토는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할 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민주화와 함께 상식이 통하는 사회,성실한 시민이 좌절하지 않는 사회가 왜 중요한지를 이번 사건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찜통더위속에 오랫동안 짜증스러운 사건에 매달려 취재하느라고 고생들 많았습니다.<정리=이덕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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