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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번 획 그어 … 펜으로 복원한 문화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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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온 세상이 고요한 새벽 2~3시에 작업을 많이 합니다. 펜촉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가 사각사각 나지요. 그 감촉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펜화가 김영택(63.사진(右))화백. 우리의 건축 문화재와 산하를 세밀하게 묘사한 그의 그림은 그윽하면서도 장중한 느낌을 준다. "펜화인데 조선 백자의 향기가 난다"(학고재 우찬규 대표)"그림에서 육중한 기운이 느껴진다"(조용헌 원광대 초빙교수)는 평을 듣고 있다.

"그림을 그릴 때는 기도하는 마음이 됩니다. 옛날 불경을 베끼는 스님의 심정이 아마 이러하지 않았을까요."

15일 서울 종로의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내가 맑아야 대상을 에센스하게(정수를 담아)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익대 미대 출신의 잘나가는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그는 나이 오십에 홀연 펜화가로 변신했다. 독실한 불자인 그는 그때부터 육식을 끊고 청정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채식만 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 어떤 물이 들면 그대로 그림에 반영되거든요. 대상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살려내려면 나 자신은 가능한 한 무색무취한 게 좋습니다."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살려낸 예를 보자. 경복궁 영재교에는 천록이란 상상의 짐승이 조각돼있다. 이를 묘사한 김씨의 작품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물속으로 금방 뛰어들 듯한 동세와 기운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김씨는 말한다. "실물이나 사진을 직접 본 사람들도 무심히 지나쳤던 무언가를 내가 살려내기 때문이지요."

0.07㎜의 펜선으로 원근과 농담 등 모든 것을 표현하는 작업은 구도자와 같은 노동의 연속이다. "4절지 크기의 펜화 하나를 그리는 데 대략 2주 정도 걸립니다. 자료 수집에 너댓새, 그림에만 열흘이 소요되지요. 획을 몇 번 긋는지 누가 물어봐서 내가 어림해본 일이 있습니다. 대략 50만 번이라는 계산이 나오더군요."

김 화백의 펜화전이 17~24일 경남 양산시 통도사 신축도서관 본관에서 열린다. '통도사 무풍한송' (사진(左)) 등 통도사를 그린 10여 점을 포함해 사찰 위주의 작품과 중앙일보에 연재 중인 '문화재 복원도'등 35점을 보여준다. 김 화백은 현재 본지에 '김영택의 펜화 기행-펜으로 복원한 문화재'를 격주로 연재 중이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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