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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20. 이병철 회장 <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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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양컨트리클럽 2번 홀 전경. 1번 홀에서 2번 홀로 이어지는 코스 양 옆은 벚나무가 심어져 있어 봄철이면 장관을 이룬다. [안양베네스트 제공]

안양CC는 국내 골프장 중 최고의 조경을 자랑한다. 나무 조경에서부터 사철 볼 수 있는 꽃까지, 하나의 정원 같다. 나무값만 수백 억원이라는 말이 있다. 그 모든 것이 고 이병철 회장이 만든 작품이다.

이 회장이 1번홀에서 세컨드샷을 한 뒤 한동안 서 있다가 "니 이리 와라"고 해서 다가갔더니 어떤 나무를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오른쪽 나무가 전체와 잘 안 어울린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나무를 흔들게 하더니 "이 나무에 표시해 둬라"라고 일렀다.

라운드를 마친 이 회장은 클럽하우스에서 그린키퍼를 불렀다. 이한섭씨다. 서울CC 출신 원예사였던 그는 농대를 졸업한 뒤 일본 연수까지 다녀온 조경 전문가였다.

이 회장은 "그 나무 빼고 무슨 나무가 어울리겠느냐"고 물었다. 그린키퍼가 두 세 가지 종류의 나무 이름을 대자 "그 중에서 어떤게 좋겠나"라고 재차 물었다.

그린키퍼가 "벚나무가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하니까 "그래, 빨리 옮겨 심도록 해라"라고 지시했다. 1주일 뒤 그 나무는 옮겨 심어졌다. 보통사람들은 그 나무가 바뀌었는 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 뒤에도 두세 차례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모든 벚나무와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이 회장께서 구입해 오늘의 숲을 꾸민 것이다.

내가 안양CC에서 33개월 근무하는 동안 지배인이 무려 다섯 명이나 바뀌었다. 이 회장은 골프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배인들은 그렇지 못했다.

"지배인 오라고 해"라는 이 회장의 지시가 떨어지면 안양CC에는 비상이 걸렸다. 어떤 지배인은 이 회장의 호출을 받고 달려와 지시사항을 메모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항상 조용히 말씀하던 이 회장이 갑자기 "네 머리가 컴퓨터가"라고 호통을 치셨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지배인은 골프장을 떠났다. 지시를 할 때 그 사람이 메모 준비가 돼있는 지를 살펴봤던 것이다.

이 회장은 연습광이었다. 특히 드라이버가 잘 맞을 때 좋아했다. 라운드 도중에 공이 아주 잘 맞거나, 유난히 안 맞는 날엔 곧장 연습장으로 갔다. 달이 뜰 때까지 연습하는 날도 있었다. 그 당시 연습장에 조명시설이 없었다. 자동화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나무상자에 담아 놓은 연습공을 하나씩 가져와 치던 때였다. 안양의 나무상자에는 24개의 연습공이 들어있었다. 이 회장은 열 상자 넘게 연습하기도 했다. "한 통만 더 치자"라는 이 회장의 말에 연습장 직원들의 퇴근시간이 늦어졌음은 물론이다.

연습할 때 공을 많이 치던 이 회장은 라운드에 들어가면 연습스윙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필드에서 샷을 할 때 연습스윙을 수차례씩 하는 골퍼가 많다. 골프는 적어도 네 시간이 걸리는 운동이다. 나는 주말골퍼들에게 라운드 때 연습스윙을 많이 하지 말 것을 권유한다. 체력이 떨어져 막판에 제스윙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내기를 할 경우 마지막 세 홀이 중요하지 않은가.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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