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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여성 宗員' 인정 싸고 공개변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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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사회 변화에 따라 관습법은 바뀐다. 출가여성에게도 종원(宗員.종중회원)자격을 달라."(용인 李씨 사맹공파의 출가여성들)

"출가여성이 종중재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 종중재산 관리가 어려워진다. 종원을 성인남자로 제한한 것은 지켜야 할 전통문화다."(용인 李씨 종중 관계자)

18일 오후 대법원. 최종영 대법원장 등 대법관 13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사상 첫 공개 변론이 있었다.

서류재판 관행을 벗어나 사회적 정책 판단이 요구되는 주요 사건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판결에 반영하겠다는 지난 8월 대법원 발표 이후 처음 사례다.

출가여성 다섯명이 2000년 4월 "남성과 동등하게 종중재산을 분배하라"며 낸 소송. 이른바 '딸들의 반란'사건이다. 1, 2심에서는 모두 졌다. "종원은 공동선조 후손 중 성년 이상의 남자로 제한된다"는 대법원 판례 때문이었다. 재판은 원고 측 대리인인 세 여성변호사와 피고 측 대리인인 두 남성변호사 간 공방 등으로 세시간 남짓 진행됐다. 2백30여명의 방청객이 귀를 기울였다.

원고 측 황덕남 변호사는 "사회 변화를 반영해 법원 판결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들도 성묘와 제례에 참여하는 것이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고 전통제례가 줄어 종중의 역할도 변했으니 종중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이에 피고 측 민경식 변호사는 "종중의 본질적 역할은 조상 제사를 모시고, 묘소를 관리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런 일은 여성의 지위향상이나 양성평등 문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 이진강 변호사는 "이번 소송의 계기는 재산분배를 둘러싼 다툼"이라면서 "애초에 원고 여성들에게 재산을 일부 증여한 건 시집에서 당당하게 살기를 바라는 취지였을 뿐 종원 자격을 인정한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대법관들도 직접 질문자로 나섰다. 고현철 대법관은 "시집간 딸에게 종원 자격을 주면 성(姓)이 다른 외손들은 어떻게 되는가"라고 물었고, 원고 측 대리인은 "외손들까지 종원 자격을 달라는 건 아니다"고 답했다.

유지담 대법관은 "여성은 아무리 효심이 지극하고 제사에 열심히 참여해도 종원이 될 수 없는데, 그렇지 않은 남성은 자동적으로 종원이 되는 것은 모순이 아니냐"고 물었다.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 세명도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이승관 전 성균관 전례연구위원장은 "출가자는 시댁의 안주인이지 종회원이 될 수 없다"며 "민주화와 부동산 시세 상승으로 막대한 부의 원천이 된 '명문가 선산'이 '종중재산'으로 개념이 바뀌고 있지만 후손들은 종중재산을 '관리'해야지 '재산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숙명여대 이진기 교수도 "종원의 기준은 혈연관계와 제사를 모시는지에 달려 있어 출가여성은 종중원이 될 수 없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이덕승 안동대 교수는 "출가한 딸들도 제사비용 일부를 부담하는 게 관례고, 친목도모를 위해서도 여성을 종원에서 제외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대법원은 이날의 변론 등을 종합해 추후 최종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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