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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갈등 풀 철학적 모델 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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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동북 아시아에서 예상되는 갈등을 철학자들이 풀자."

기상악화로 몽골이 참가하지 못한 가운데 한.중.일.러 철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17일부터 이틀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소재 극동대학에서 동아시아 철학자 대회를 열었다. 이번 행사는 호원대(총장 강희성)와 러시아극동대학(총장 쿠릴로프)이 공동으로 마련한 것이다.

각국에서 약 10명씩 총 4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 대회는 '평화와 공존을 위한 철학 모델 만들기'라는 제목처럼 동북아 지역의 철학자들이 동북아의 갈등을 철학적 담론으로 해결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이 '합리성'을 키워드로 잡은 것은 이 때문. 지역주의와 폭력적인 세계화의 폐해를 동시에 넘어서기 위해서는 합리성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다.

하지만 다원성.인권.공존을 담아낼 수 있는 합리성을 두고 의견은 다소 엇갈리는 듯했다. 한국 측 기조발표를 한 이명현(서울대)교수는 "지금까지 인종주의.전체주의.민족주의의 뿌리였던 '차이'가 본질적으로 '배제'를 의미했다"고 설명하고, "이를 '상호보완'을 의미하는 인식론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알렉산더 비네브스키 극동대 철학과 과장 등은 러시아가 지니고 있는 지정학적 특징에 주목, 유럽적 사유와 동양적 사유의 접합를 통해 새로운 합리성의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비네브스키 학과장은 "문명 간의 대화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지만 그 근본에 합리성을 둔다면 대화가 가능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동서양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러시아적 사유를 주목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반면 중국은 동양의 전통에서 새로운 합리성을 찾자는 입장이었다. 펑펑(彭鋒).쉬샹둥(徐向東) 베이징대 교수 등 중국의 학자들은 유교와 그리스 사유(특히 공자의 '인성'개념과 소크라테스의 '덕' 개념 등)를 비교하거나 실용주의와 유교의 관계를 중요시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도 종국에는 중국의 전통에서 서양의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감추지 않았다.

일본의 경우 단 유수케(旦 祐介, 도카이대) 교수 등은 동아시아의 지역주의.국가주의를 비판적으로 지적해 주목을 받았다. 이는 탈국가주의를 중심으로 한 세계 보편주의를 통해 과거사가 초래한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고자 하는 일본 지식인들의 최근 경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행사는 2008년 제22차 세계 철학자대회(조직위원장 김여수)가 서울에서 개최되기로 확정된 상태에서 동아시아의 철학담론을 모아 이를 세계적 수준의 담론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예비 모임의 성격을 가졌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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