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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장·떠넘기기 군·검·경 공조 “구멍”/정보사땅 사건수사 이모저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언론서 새 사실 밝혀내면 “뒷북치기” 일쑤/김영호씨 배후 관계 감추려 뉘우치는 척
○…정보사부지매각 사기사건은 처음 국방부합동조사단이 전 합참군무원 김영호씨의 범행을 인지한 때부터 18일이 지난 12일까지 시종 군­검­경간의 공조체제미비와 떠넘기기식 자세로 수사력의 누수현상을 빚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수사진행과정을 지켜본 수사전문가들은 이때문에 이미 충분히 검거하거나 확보할 수 있었던 범인·증거물들의 상당수를 놓쳤다고 아쉬움을 표시한다.
특히 세간의 관심이 「배후」 규명에 쏠려 수사당국들의 이같은 소극적 자세가 축소 또는 은폐를 위한 고의적인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최초의 허점은 군과 검찰과의 공조부재.
국방부합동조사단이 지난달 23일 김씨에 대한 결정적 제보를 받아 5일만인 28일 중국에서 신병을 확보했으나 이후 검거발표때(지난 6일)까지 8일간 신속한 검거를 요하는 국내 관련인물들을 검찰에 통보치 않았다.
사전에 정보를 통보받았으면 정씨 일당이 뒤늦게 자수하기전 신병을 미리 확보할 수 있었으며 현재 잠적중인 김인수·곽수열·박삼화 등 관련인물에 대한 추적도 쉬웠으리라는 지적이다.
○…초동수사단계에서 보여줬던 검찰과 경찰간의 「떠넘기기 수사」도 이번 사건의 해결을 어렵게 만든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검찰은 2일 정건중씨 등 7명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받고도 국민은행측이 3일 정덕현대리를 고발,강남경찰서에서 수사를 시작하자 『경찰이 부정인출부분을 밝혀낸뒤에야 사기사건조사가 가능하다』며 뒷짐만 지고 있다 사건이 급속히 비화되자 사흘뒤인 6일 부랴부랴 수사에 착수.
경찰도 『수백억원대의 사기사건을 일개 경찰서가 어떻게 수사하느냐』며 축소수사로 일관,결과적으로 김인수씨 등 브로커들이 잠적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준 셈.
○…검찰은 제일생명측이 2백30억원을 사기당했다며 1일자로 이 사건의 핵심인물인 정건중씨 등 7명에 대해 고소장을 제출했는데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별다른 수사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경찰에서의 확인으로 4일 오후부터 사건 전모가 대대적으로 보도된 뒤에도 다음날이 일요일이란 이유로 담당 검사조차 출근하지 않는 등 무성의로 일관했다.
○…검찰은 특히 수사를 진행하면서 단계마다 「더이상은 없을 것」이란 속단으로 일관하다 언론의 추적취재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 또 그 부분만큼만 수사를 확대하는 등 이른바 「뒷북수사」에 급급한 인상.
대표적 예로 이번 사건의 「아지트」로 이용된 성무건설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사건발생 1주일뒤인 11일 오후에야 뒤늦게 실시해 「늑장수사」의 본보기로 지적되기도.
검찰은 이날 수사관 6명을 동원,성무건설이 입주해 있는 서초동 관선빌딩 3,4,10층을 차례로 뒤졌으나 회사직원들이 이미 중요 서류를 빼돌려 놓은 상태여서 별볼일없는 「쭉정이 서류」만 라면박스로 세상자분을 압수.
또 11일 이번 사건의 핵심으로 수배중인 김인수씨(40·명화건설회장)의 행적 보도가 나간뒤에도 이날밤까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은 커녕 기본적인 탐문조차 펴지 않았다.
○…검찰은 이 사건의 핵심이 될 수 있는 「제일생명에서 과연 누구까지 알았느냐」는 부분과 관련,거짓말을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스스로가 여러차례 밝혀온 『성역없는 수사』 운운이 신빙성이 없다는 느낌을 주기도.
검찰은 보험감독원으로부터 6일 『제일생명 하영기사장이 윤성식상무로부터 땅매입을 보고받았다』는 통보를 받고도 여러차례 브리핑을 통해 『윤 상무 이외의 배후는 없다』고 강조하다 보험감독원의 확인 사실이 보도되자 뒤늦게 하 사장을 소환하는 등 언론의 눈치보기 수사를 하는 듯한 인상. 검찰은 결국 『하 사장과 그룹오너인 조양상선 박남규 회장도 부지매입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당초의 입장에서 크게 선회.
○…뿐만 아니라 90년 12월 정영진씨가 사무장을 맡아 결성한 「강남연합주택조합」 사무실이 있는 서울 역삼동 두꺼비빌딩 10층 1001호에도 사건발생 1주일이 지나도록 수사당국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고 있다.
이 빌딩 관리반장 배정룡씨(46)는 『강남연합주택조합 보도가 나가기 하루전인 9일 낮 12시쯤 조합관계자 2명이 봉고차 1대·코란도 1대에 서류상자를 가득 실은채 어디론가 떠나버렸다』고 말해 검찰이 좀더 기민하게 행동했다면 중요 자료가 수사착수 이후에도 버젓이 빼돌려지는 사태를 막을 수 있지 않았느냐는 지적.
○…수사진은 조양상선 박 회장과 제일생명 하 사장이 『윤 상무로부터 정보사 부지매입 계획을 사전에 보고받지 못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을 놓고 해석이 분분.
일부에서는 『두사람이 크게 처벌받을 일이 아닌데도 사전보고 부분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는 것은 이미 날려버린 4백73억원의 책임소재를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하는가 하면,한편에선 『회사 수뇌부까지 사기행각에 속아 넘어 갔다는 것을 인정할 경우 금융기관의 신뢰도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추측.
○…공문서위조 및 동행사 등 혐의로 구속된 전 합참군사연구실 자료과장 김영호씨(52)는 『정건중씨 일당에게 당했다』고 책임을 미루던 수사초기와는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 「사기꾼」임을 인정하는 등 태도가 누그러져 주목.
이와 관련해 검찰일각에서는 『김씨가 진정으로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기 보다는 배후관계 등 골치아픈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단독범햄임을 강조하려는 술수로 보인다』는 분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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