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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사회,취업노인에 “큰 관용”(특파원코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능률·속도는 없지만 고객들 불평 않고 이해/한국도 고용법 제정보다 관심과 격려 필요
【워싱턴=문창극】 미국사회에서 눈에 띄는 것중 하나가 노인들의 사회활동이다.
맥도널드 햄버거집에서부터 유명백화점까지 노인점원이 자주 눈에 띄고 유료도로 톨게이트 수납인 등 비교적 육체적 노동이 수반되지 않는 자리엔 으레 노인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노인들에게 노후에도 계속 할일을 줌으로써 소외감을 덜어준다는 인간적인 차원에서뿐 아니라 사회의 가용노동력을 완전히 이용한다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가용노동력 인정
우리나라도 최근 고령자 고용촉진법이 발효,노인들의 취업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법을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얼마나 노인노동력을 이해해주느냐에 따라 노인고용 문제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본다.
노인이라는 신체적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으면 금방 불만과 불평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기자는 최근 노인과 관련된 몇가지 경험을 겪으면서 우리국민들이 과연 노인 노동력에 얼마나 관용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한 백화점에 들러 기성복을 구입했다. 미국인 체격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소매가 길어 이를 고쳐야만 입을 수 있었다. 수선비로 소매 한쪽 고치는데 4달러를 더 내도록 돼있다.
○기다려주는 손님
양복값에다 8달러만 더 내면 되는 간단한 계산을 놓고 70세쯤 돼보이는 노인이 이를 붙잡고 10여분이나 씨름하는 것이었다.
또 한가지 지난 4일 미국 독립기념일 연휴를 이용해 워싱턴에서 3시간쯤 떨어진 해변에 갔던 경험이다.
오후일을 마치고 떠났기 때문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일행을 찾아야 했다.
캠핑장은 1천여 가족을 수용하는 넓이가 수백에이커나 되는 대규모 시설이어서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직접 돌아다니며 찾기란 불가능했다. 관리사무소에 가니 이곳도 노인(할머니)들이 등록을 받고 있었다.
미리 예약했기 때문에 먼저 도착한 일행의 이름만 주면 그 옆자리에 텐트를 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할머니들이 눈이 나쁘고 손이 더뎌 1천여장의 등록카드중 일행의 카드를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배워야할 “교훈”
결국 카드를 찾지못해 첫날은 인근 여관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관리사무소에 가보니 새팀(교대근무라서 낮시간은 젊은이들이 일한다)으로 교대된 뒤라 교대된 젊은이에게 카드를 찾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2분도 안돼 일행의 카드를 뽑아들었다. 노인들의 손이 더뎌 능률이 오르지 않는 점을 모두들 잘 알고 있다. 단순한 계산을 하는데도 느릿느릿 시간이 걸리니 기다리는 사람은 속에서 불이 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모두들 묵묵히 기다려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그 노인은 당장 해고를 면치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고령자 고용촉진법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같은 참을성을 기르지 않고는 노인 고용문제는 곧 벽에 부닥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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