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대 못 낸 정태수씨 채무소송서 소 각하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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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84.사진) 전 한보그룹 회장이 소송을 제기한 뒤 인지대(印紙代.법원에 사건처리를 요청하며 내는 수수료)를 내지 못해 소가 각하(却下.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재판 시작 전에 소송을 끝내는 것)됐다. 정씨는 지난해 3월 ㈜한보의 1996년 은행 대출과 관련, "갚아야 할 빚이 없다"며 신한은행을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냈다. 14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당초 정씨는 "채무 규모를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법원은 '소송액을 산출할 수 없는 경우 소송액은 2000만100원으로 한다'는 대법원 규칙에 따라 소송액을 2000만100원으로 정했고, 인지대를 9만5001원으로 계산했다.

하지만 소송이 진행되면서 정씨의 채무가 481억원 이상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법원은 부족한 인지대 1억6888만여원을 내라고 명령했다.

이에 불응한 정씨는 "인지대를 낼 돈이 없다"며 법원에 소송구조를 다시 신청했고,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기각됐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정씨가 조세채무 2400억여원을 부담하고 있는 등 자금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소송구조는 '자금 능력 부족' 외에도 '패소 가능성이 낮을 것'을 요건으로 하는데 이 점이 확실치 않다"고 밝혔다. 결국 서울중앙지법은 정씨의 소송구조 신청을 기각하고 신한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도 각하했다.

국세청 공무원 출신으로 한보그룹 회장을 지낸 정씨는 97년 한보철강 부도 사태 이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2002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박성우 기자

◆소송구조=자금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법원이 재판비용.변호사 및 집행관의 보수 등을 유예해 주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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