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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초속 5' 들고 한국 오는 일본 애니 작가 신카이 마코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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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혜성처럼 나타나 일본 애니메이션계를 놀라게 한 작가 신카이 마코토(35.사진(右))가 한국을 찾는다. 23~27일 서울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장에서 열리는 '시카프(SICAF) 2007'의 개막작 '초속 5㎝'를 들고서다. 그는 2005년 시카프에서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이하 '구름의 저편')로 우수상을 받은 바 있다.

신카이는 철저하게 분업화된 애니메이션의 전 공정을 1인 작업으로 해내 주목받은 작가다. 포토샵이 깔린 컴퓨터 한 대가 비밀병기다. 2002년 게임회사에 다니며 모은 돈 2000만원으로 만든 디지털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는 대단한 화제였다. 그림 수업이라곤 받은 적 없는 신예가 연출.각본.편집.음악 등 전 과정을 도맡은 1인 제작시스템을 선보인 것. 이후 그는 '천재적 독립 애니메이터'라는 별칭을 얻었다.

애잔한 정서와 극사실적 배경 묘사로 국내에도 이미 팬이 많은 그의 '초속 5㎝'는 6월 21일 국내 개봉된다.

지난달 중순 그를 도쿄에서 만났다. 신주쿠 부근 자택. 작업실을 겸하는 곳이다. 고양이 집에 달린 '사유리'라는 문패가 눈길을 끈다. 버려진 고양이를 주워다 '구름의 저편' 여주인공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초속 5㎝'를 소개한다면.

"3부작 옴니버스 영화다. 한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하기까지, 한 소녀와의 사랑 얘기다. 전체를 하나로 봐도, 세 편의 독립영화로 봐도 좋다. 제목 '초속 5㎝'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다. 한 팬이 보내온 편지에서 착안했다. 멈춘 듯 움직이는 미묘한 속도. 신비한 느낌이 좋아 제목으로 썼다."

-장편 데뷔작 '구름의 저편' 이후에는 1인 작업 대신 여러 스태프와 일하고 있다.

"'초속 5㎝'는 메인 스태프가 20명, 총 스태프가 50명이다. '구름의 저편'보다 작은 규모다. 1인 작업은 취미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택할 수밖에 없던 방식이었다. 완성도를 높이고 러닝타임이 길어지면 다수의 스태프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스태프 수를 작게 하고 각 영역을 직접 지휘할 생각이다.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제의가 있지만 당장은 응할 생각이 없다."

-흩날리는 꽃잎, 창가에 맺힌 빗물 등 고요하게 정지된 이미지가 특징이다. 서양화 못지않게 빛을 잘 써서 '빛의 작가'로도 불린다.('구름의 저편'의 배경은 그가 서양화과 학생들에게 디지털을 가르쳐 완성한 것이다)

"정지된 그림을 연결하는 느낌, 캐릭터들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자 제작 여건과도 관계 있다. 모든 작업을 내가 하고 컷 수가 많지 않으니 자연히 움직임과 속도가 떨어진다. 빛도 중요한 요소다. 그저 '맑은 날'이 아니라 시간, 구름의 개수와 상태, 햇볕의 방향 등을 상세하게 제시한다."

-실제 장소를 영상화한다고 들었다.

"'95년 도쿄' 같은 식으로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헌팅한다. 비슷한 장소를 골라 사진으로 찍은 다음 그림으로 창조한다. 최대한 사실에 가까운 화면을 찍고 싶어서다."

-개인.관계.추억.소통.상처 등 사적인 주제를 감성 코드로 다룬다.

"일본에서는 1995년 이후 대작 애니메이션이 잘 되지 않는다. 지진, 옴진리교 사건 등으로 사회가 불안해지자 큰 이야기보다 오히려 작은 주제가 설득력을 갖게 됐다. 바로 옆 사람과 소통하면서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가 사람들의 관심사다."

-이력이 독특하다.

"'라퓨타' '나우시카'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좋아했지만 애니 작가를 꿈꾼 적은 없다. 애니보다 책을 좋아했고 전공도 일문학이다. 우연히 들어간 게임회사에서 타이틀 오프닝을 제작하다 뒤늦게 적성이란 걸 알았다. 작가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게 30살 때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의 거리를 이어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도쿄=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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