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me] 칸을 빛낸 거장 모시고 환갑 잔치 성대하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해마다 5월이면 전 세계 영화계의 눈과 귀가 프랑스 남부 소도시 칸에 집중된다. 세계 최고의 영화잔치로 꼽히는 칸영화제 때문이다. 그 칸영화제가 올해 '환갑'(60주년)을 맞는다. 세계의 숱한 영화제 가운데 첫 손에 꼽히는 칸이지만, 그 실체는 꽤 모순적이다. 예술과 산업 사이에, 스타와 작가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는 영화라는 장르 자체의 특성 때문일까. 16일 개막하는 칸영화제의 지난 세월과 올해 상차림을 살펴본다.

# 정치 vs 예술 vs 장사

칸영화제는 본래 1939년 9월 시작될 뻔했다.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가 이미 7년 전 베니스 영화제를 시작한 터였다. 하지만 칸영화제 개막일로 점찍어 놓은 날, 또 다른 독재자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다. 영화제는 연기됐다가 46년 처음 열렸다. 48년과 50년에는 재정 문제로 열리지 못했다. 정부 지원과 기업 후원을 합쳐 2000만 유로(250억원)의 예산을 자랑하는 오늘의 칸이 상상하기 힘든 과거다.

칸이 정상의 영화제로 커온 데는 59년부터 함께 열려온 필름마켓의 공이 크다. 영화제의 공식 상영작은 경쟁 부문 20여 편을 비롯, 단편까지 모두 합쳐도 매년 100편 이내다. 하지만 영화를 사고파는 시장에서 상영되는 작품은 그 10배가 넘는 1000편(2006년 기준)에 이른다. 최근 10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공식 상영장인 뤼미에르 극장에서는 묵직한 사회비판을 담은 영화가 환호를 받는가 하면, 그 앞의 크와제트 거리에서는 각양각색의 영화가 홍보전쟁을 치른다.

# 프로의 영화제 vs 평등한 영화

이런저런 이유로 칸에 몰려드는 전 세계 영화인은 이제 3만 명에 육박한다. 취재진도 4000 명쯤 된다. 칸은 일반 관객이 아니라 이런 '선수'들을 위한 영화제다. 공식 상영작은 표를 팔지 않는다. 주최 측이 내준 초청장과 우아한 성장(盛裝) 차림이 필수다. 나머지는 대개 언론.마켓 대상이다. 일반관객의 열기가 영화제의 성패를 좌우하는 부산.전주 등 국내 영화제와 크게 다르다.

이런 칸도 68년 프랑스를 뒤흔든 정치.사회적 격변에 한 방 얻어맞은 적이 있다. 영화제 직전에 파리의 시네마테크 원장인 앙리 랑글루아가 타의로 물러나면서 영화인들이 들고 일어섰다. 트뤼포.고다르 같은 젊은 감독들은 랑글루아의 복직을 주장하는 시위를 벌인 끝에, 영화제가 개막한 칸으로 달려가 행사를 중단시켰다. 프랑스 전역을 뜨겁게 달군 학생시위와 노동자 파업과 연대하자는 취지였다.

이를 계기로 이듬해부터 '감독주간'이 생겼다. '모든 영화는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난다'는 구호를 내걸고 공식초청작과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초청했다. 감독주간은 62년에 먼저 생긴 '비평가주간'과 함께 칸영화제와 같은 시기에, 주최자가 다른 행사로 열리고 있다. 현재 이 세 행사는 보완적이다. 신인 감독의 첫 영화에 주는 '황금카메라상'의 경우 공식초청.감독주간.비평가주간의 출품작을 통틀어 시상한다.

# 그랑프리 위에 황금종려상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은 55년 도입됐다. 이전에는 '그랑프리'를 시상했다. 사실 초창기 영화제는 이벤트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출품작이 상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의 그랑프리(심사위원대상)는 황금종려상 직전에 시상하기 때문에 2등상으로 여겨진다. 박찬욱 감독이 2004년 '올드보이'로 받은 상이 이것이다. 이밖에 감독상.남녀주연상.각본상.심사위원상 등을 시상한다.

지금까지 황금종려상을 두 번 받은 감독은 5명뿐이다. '지옥의 묵시록'의 프랜시스 코폴라를 비롯, 일본의 이마무라 쇼헤이, 덴마크의 빌 어거스트, 세르비아의 에밀 쿠스트리차, 벨기에의 형제 감독 다르덴 등이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여성 감독은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이 유일하다. 93년 천 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와 동시에 받았다.

올해 60주년 잔칫상을 차리면서 칸은 그동안 키워낸 거장들을 불러 모으는 것을 잊지 않았다. 22편의 공식경쟁작 가운데 이미 황금종려상을 받은 감독이 4명이나 된다. 에밀 쿠스트리차, 그리고 모두 미국 감독인 퀜틴 타란티노, 구스 반 산트, 코언 형제다. 전반적으로 미국 영화의 강세다. 2004년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마이클 무어도 신작 다큐를 비경쟁으로 선보인다. '세븐' '파이트 클럽'의 감독 데이비드 핀처는 신작 '조디악'으로 경쟁 부문에 입성했다.

# 미안하다 사랑한다, 할리우드

할리우드와 칸의 관계는 흔히 '애증의 역사'로 요약된다. 경쟁작 리스트만 보면, 천문학적 제작비를 들인 할리우드 대작 영화가 변방에서 온 저예산 예술영화보다 못한 대접을 받곤 한다. 반면 미국영화 중에도 작가영화나 독립영화에 대해서는 애호가 뚜렷하다. 아카데미에서는 죽을 때까지 감독상을 못 받았던 할리우드의 이단아 로버트 올트먼(70년 '매시')이나 5전6기로 올해 간신히 감독상을 받은 마틴 스코세이지(76년 '택시 드라이버')도 칸에서는 일찌감치 황금종려상의 영광을 안았다. 스코세이지는 올 칸에서 영화의 보존과 복원을 목적으로 한 '세계영화재단' 설립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할리우드 톱스타를 칸이 홀대하느냐 하면, 전혀 아니다. 출연진이 화려한 상업영화를 비경쟁작으로 초청해 스타를 불러모으는 것은 칸의 낯익은 전략이다. 올해에는 조지 클루니.브래드 피트 등에 알 파치노까지 가세한 '오션스13'이 있다. '오션스13'은 89년 최연소 황금종려 수상자가 됐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영화인만큼 지난해 개막작 '다빈치 코드' 같은 맹비난은 피할 것 같다.

이후남 기자

■ 올 칸영화제 경향은

개막작 ‘마이 블루베리 나이트’

올 칸영화제 장편경쟁 부문에는 '밀양'(이창동 감독)과 '숨'(김기덕 감독) 두 편의 한국 영화가 초청됐지만, 아시아 전체로는 약세다. 일본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모가리의 숲'과 홍콩 왕자웨이 감독의 개막작 '마이 블루베리 나이트'을 합쳐도 네 편뿐이다. 더구나 '마이 블루베리 나이트'는 가수 노라 존스, 톱스타 주드 로가 출연한 영어 영화다.

올해에는 동유럽의 약진이 눈에 띈다. 우선 러시아 영화가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알렉산드리아'와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의 '추방' 두 편이다. 루마니아와 헝가리도 각각 12, 19년 만에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루마니아 감독 크리스티앙 문주의 '넉 달, 삼 주, 이틀'은 낙태는 물론 피임도 불법으로 몰았던 독재자 차우셰스쿠 시절의 이야기다. 헝가리 중견 감독 벨라 타르는 '런던에서 온 사나이'를 선보인다.

프랑스 영??어림잡아 4, 5편이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다양한 구색이 특징이다. '페르세폴리스'는 만화가 원작인 애니메이션이고, 크리스토프 오노레 감독의 '사랑의 노래'는 뮤지컬이다. 노골적 성묘사로 유명한 여성감독 카트린 브레야는 19세기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늙은 정부'를 내놓았다. 미술가 출신의 감독 줄리앙 슈나벨은 전신마비 상태의 저널리스트가 눈꺼풀을 깜박여 집필한 것으로 유명한 책 '잠수복과 나비'를 영화화했다.

이 밖에 한국영화는 단편경쟁 부문에 양해훈 감독의 '친애하는 로제타'가, 영화학교 학생들의 중단편을 대상으로 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홍성훈 감독의 '만남'이 각각 초청됐다. 신상옥 감독의 1962년 작 '열녀문'도 새로 복원한 필름을 공개하는 '칸 클래식'부문에 나간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