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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욕설로 가득 찬 시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정통시의 미학으로 봐서는 추잡하고 더러운 시들만 모은 시선집들이 출간됐다.
들꽃세상 출판사는 최근 패러독스시선 시리즈로『내 귀가 섹스 쪽으로 타락하고 있다』『독자 놈들 길들이기』『먹이를 하늘에서 구하는 새는 없다』등3권을 동시에 펴냈다.
이 시 선집들은 각기 80년 이후 등단한 젊은 시인들의 섹스·욕설·동물을 주제로 한 시들을 모아 놓고 있어 정통시의엄숙주의에 가한 신선한 충격과 함께 한편으로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업성도 읽게 한다.
「섹스로부터 해방되자」를 부제로 단『내 귀가…』에는 김수경·김영승·박남철·유하·이윤택·장정일등 15명의 시를 싣고 있다.
『잘 벗겨지지 않아요/-제비(?)표 페인트/알아서 빨아줘요/-대우 봉(?)세탁기/구석구석 빨아줘요/-삼성(?)세탁기/빨아주고 비벼주고 말려주고/-금성(?)세탁기/우리는 그 이가 다 빨아줘요/잘 빨아주니 새댁은 좋겠네/-럭키 슈퍼타이//무엇이, 무엇을 의도적으로 빼는 이 광고에/우리는 무엇을 꼭 집어넣으라고 욕해야 할지』
이 시 선집에 실린 함민복씨의 표제 시 전문이다.
광고문안에 노골적으로 숨긴 성의 상품화를 꼬집고 있는 시다.
이밖에도 이 시 선집에는 포르노보다도 더 농후하게 육두 문자를 마구 쓰며 도착된 성행위를 묘사해 시 스스로 타락하며 역설적으로 추잡한 사회, 성에 대한 각성을 일깨우는 시들이 실렸다.
『내 언사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 놈들에게→차렷, 열중 쉬엇, 차렷,//이/만한 놈들이……』
『독자 놈들 길들이기』에 실린 박남철씨의 표제시중 일부분이다.
문화전통과 사회제도에 억압·구속당하고 살면서도 소극적·순응적인 현대의 삶을 마음껏 욕함으로써 자유를 지향하려는『내 귀가…』에 실린 시인들의 욕설 시들만 모았다.
『먹이를…』에는 인간사회와인간자체의 모습을 동물에 투영시킨 고진하·김기택·이문재·장석남·장정일·최승자·최준·황인숙씨의 시를 싣고있다.
쥐·까·소·바퀴벌레등에 흉악하게, 혹은 처절하게 투영시킨 시인들의 모습에서 인간성·자연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같이 섹스나 욕설 또는 혐오스런 동물을 주재로 한 시는 독자들에게 강한 충격을 주며80년대 중반 소위「해체 시」라는 시의 한 흐름을 이룰 수 있었다.
숭고하고 우아한 기존시의 틀을 아프게 깨뜨림으로써 80년대 억압적 정치·사회 분위기에 숨통을 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충격요법을 노리는 이 같은 시들의 생명은「단 한번 내보임」이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시인이, 혹은 뒤쫓는 시인이 비슷한 이미지를 자꾸자꾸 되풀이해 충격에 의한 역설적 효과는 잃고 독자들의 속된 호기심만 자극해 그들이 꼬집는다고 하는 타락한 상업주의로 흐르고 있는 시들이 더러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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