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를 더 마시라는 건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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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나라 컬러TV나 오디오 카셋이 EC(유럽공동체)의 반덤핑 관세부과 대상이 되고 신발류 등도 수출자율 규제를 받고 있는 터에 정부는 오히려 EC산 수입 위스키의 주세를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주세정책을 실시해온 일본이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 제소당해 결국 위스키 세율을 낮추었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양보했다는게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1백억달러의 무역적자에 고심하고 있는 정부가 흑자 9백억달러의 일본과 똑같은 정도로 양보할 수 밖에 없었다면 우리의 협상력 약화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술 시장은 전면적으로 개방된 상태다. 지난 84년 맥주에 대한 수입자유화 조치 이후 세계 각국의 거의 모든 술이 들어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이 폐쇄돼 있다거나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나라도 시비를 걸 여지가 없다. 또 스카치 위스키의 종주국인 영국 등 EC는 우리나라가 국산과 외제술을 차별한다는 불평을 하고 있으나 국산 위스키는 수입 원액을 주원료로 국내에서 생산해 완성수입제품과 동일한 세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차별이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EC의 주세관련협의에서 현행 1백50%인 위스키의 주세율을 오는 94년부터 1백20%로,96년부터는 1백%로 인하하고 소주에는 교육세(주세율의 10%)를 물리기로 합의했다. 위스키와 소주(주세율 35%)는 같은 증류주이기 때문에 세금도 같아야 하며 그같은 주세정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GATT에 제소하겠다는 EC의 압력에 굴복해 단계적인 세율인하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양자간의 협의에 따라 94년부터 대중술인 소주값이 오르는데다 맥주는 주세율(1백50%)은 손대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위스키 주세율보다 더 높아진다. 비록 어느정도의 가격차이가 있긴 하나 애주가들에게 소주나 맥주보다는 차라리 위스키를 마시라고 권장하는 꼴이 되는 셈이다.
여러 종류의 술에 대해 얼마만큼의 세율을 적용하느냐는 그나라 국민의 술 소비행태나 소득수준 및 술의 질 차이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아직도 위스키를 대중 술로 여길만큼 소득수준이 높지 않으며 위스키의 세율인하가 과소비를 부추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또한 애주가의 선호행태로 볼때 맥주의 주세율이 적어도 위스키보다 높다는 것은 균형상 납득이 가지 않는다. 현재 맥주의 세수비중이 높다고 해서 수입의존도가 큰 위스키 세율과의 조정을 미룬다면 외국의 압력에 따라 우리나라는 주세정책이 흔들리고 술소비행태도 왜곡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도 우리 입에 맞는 술을 즐길 수 있는 줏대있는 주세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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