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조폭 영화여, 침을 뱉어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9호 12면

살다 보면 너무 억울한 일을 당해 앞이 캄캄할 때가 있다. 상대방이 힘센 거물이라면 무력감마저 든다. 경찰에 신고해본들 일의 자초지종을 따진다고 사람 피곤하게 할 게 뻔하고, 차라리 ‘대부’(1972)의 돈 코를레오네(말론 브랜도)를 찾아가 선처를 하소연하고 싶은 것이다. 억울한 마음이 들 때는 공정한 것 따위는 필요없고 편파적인 게 약발이 먹힐 때가 더 많다.

‘조폭 장르’ 영화가 사랑받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대부’를 찾아가고픈 관객의 마음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경찰이니 법이니 하는 사회 제도가 결코 나의 편이 아니라는 소외감이 들 때, 바로 그 억울함을 파고드는 것이다. 그래서 조폭 장르의 주인공은 대개가 제도권의 가치들을 비웃고 부숴버리는 반영웅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법 바깥에서 제 마음대로 행동한다. 여기에 관객은 환호한다. 한 번쯤은 저들처럼 제도 속의 모든 가치를 무시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발표된 조폭 영화의 대표작들을 보면 ‘장르영화’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떠맡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하면 설사 영화적 완성도는 높아질 수 있을지 몰라도 장르의 생명은 끊어지게 마련이다. 대중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는 장르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관객과의 타협으로 태어난 ‘장르영화’가 그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면 사실 영화적 완성도라는 것도 의혹의 대상이 되고 만다. 90년대 후반 이후 그렇게도 우려먹던 ‘조폭 영화`는 이제 스스로 자신의 묘비명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멜로와 조폭 사이서 길을 잃다

영화 ‘우아한 세계’.

‘우아한 세계’(한재림 감독)는 ‘로드 투 퍼디션’(2002)의 모티브처럼 조폭 아빠의 부성(父性)을 다룬다. 그는 조직의 중간보스로 이제 막 한몫 잡을 참이다. 그런데 아내는 어서 조폭 생활을 그만두라고 닦달이고, 딸은 창피한 아버지가 그냥 다른 조폭들처럼 칼 맞아 죽었으면 바란다. 상황이 이런데도 주인공인 강인구(송강호)는 조직에서 발을 빼지 못한다. 바로 그 가족 때문이다. 캐나다에 유학 중인 아들의 학비까지 벌려면 더욱 더 열심히 ‘조폭질’을 해야 한다.

‘우아한 세계’는 결국 직업이 조폭인 한 남자의 자질구레한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들을 끔찍이 아끼는 지극히 평범한 가장이다. 너무나 제도적이어서 그에겐 반사회적인 전복성이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빛깔만 조폭이지 책임감에 짓눌려 사는 여느 가장과 다를 바 없다. 하다못해 싸움이라도 잘 하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이런 남자에게 제도의 차별과 억압에 분노하는 갱스터의 본분을 기대했다간 큰 실망만 하게 마련이다. 조폭 장르의 주인공에게 관객이 바라는 것은 한순간이라도 좋으니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순응주의적 태도가 아니라, 제도를 초월하는 반영웅적인 몸짓이다. 그 몸짓의 대가로 목숨을 내놓아야 할지라도 말이다.

멜로 드라마와 조폭 영화의 중간에서 중심을 잃은 듯한 ‘우아한 세계’는 결국 제도에 순응해야만 하는 멜로 드라마 주인공의 눈물 나는 운명을 그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도를 때려부수는 조폭의 긴장된 전복성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끝나고 말았다.

직업으로서의 조폭 생활은 지난해 ‘비열한 거리’(유하 감독)에서 이미 묘사된 테마다. 여기서도 조폭 주인공(조인성)은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주먹을 휘두른다. 그는 가족들에게 남들과 같은 가정을 선사하고 싶고, 후배들에게 먹고살 거리를 주고 싶어 하는 일종의 가장이다. 그 책임감에 ‘조폭질’을 하는 것이다. 현실은 이보다 더 큰 책임감을 요구할지 몰라도 조폭 영화에서 관객이 주인공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런 가치순응적인 태도가 아니다. ‘말죽거리 잔혹사’(유하 감독)에서 남자 주인공(권상우)이 내뱉는 말, “대한민국 학교, 다 X까라 그래” 같은 반사회적ㆍ반영웅적 태도에 관객들이 괜히 흥분하는 게 아니다.

반(反)영웅 대신 순응주의자 등장

조폭 주인공을 내세워 멜로 드라마의 절정에 이른 문제작은 지난해 말 개봉된 ‘열혈남아’(이정범 감독)이다. 데뷔감독으로선 뛰어난 작품의 완성도를 보였지만, 관객들로부터는 매정하게 외면받았다. 2001년작 ‘파이란’(송해성 감독)을 기억나게 하는 이 영화도 가족의 가치를 곱씹게 하는 주제를 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인공이 제 멋대로 사는 조폭이고, 그런 독불장군식 도발성을 자신의 캐릭터로 잘 표현하는 설경구가 주연이라는 점이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 관객은 쉽게 조폭 영화를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조폭의 억눌린 분노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영화가 주목하는 점은 가족의 애틋함에 눈물 흘리는 인정 많은 남자다. 말하자면 영화는 조폭 장르의 외피를 걸치고 있는데, 사실은 멜로 드라마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장르의 관성은 영화 제작에 관련된 사람들의 자의적인 의도를 넘어선다는 사례를 잘 보여준다. 장르 영화는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하고, 그 모습 그대로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지 외부의 해석에는 별로 영향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열혈남아’는 멜로 드라마를 보여주며 조폭 장르의 외피를 너무 많이 걸쳤다. 지금도 많은 관객은 ‘열혈남아’를 조폭 영화로 기억할 것이다.

조폭들이 이렇게 전통적인 가치에, 이를테면 부성(‘우아한 세계’ ‘비열한 거리’)과 모성(‘열혈남아’)에 눈물 흘리고 있으면 ‘장르’로서의 조폭 영화는 그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조폭 장르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회제도를 오히려 경멸하고 조롱하는 반영웅들이다. 이들의 라이벌은 제도권의 가치, 그리고 국가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떠맡게 된다. 그런데 최근 조폭 영화의 주인공들은 제도권의 전통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더욱 더 잘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아이러니가 생겼는데, 순응주의자 조폭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최근의 ‘의사(擬似)’ 조폭 영화는 설사 작품성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생존 터전인 장르 자체의 소멸을 재촉한다는 점이다. 장르의 법칙에 따르면 조폭 영화의 주인공은 반영웅의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
한창호씨는 미술과 몸을 섞은 영화 이야기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영화, 미술의 언어를 꿈꾸다』로 이름난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사가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