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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세종대왕 리더십의 재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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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
박현모 지음
푸른역사, 292쪽
1만3000원

"당시 조선은 가뭄과 홍수로 인해 흉작이 아닌 해가 없었으며 창고가 거의 비어 백성을 구휼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함경도와 황해도의 굶주린 백성들은 흙을 파서 떡과 죽을 만들어 먹어야 했다."

흔히 세종대왕 시절은 '태평성대'로 통한다. 그러나 '세종실록'을 들추다 보면 "하루도 위기 아닌 때가 없었고, 한 가지 일도 순탄하게 이뤄진 적이 없었던 때"임을 알 ?있다. 얼마나 상황이 좋지 않았던지 백성들 사이에서 "임금 때문에 살기 힘들다" "양녕대군이 왕이 됐으면 백성들이 자애로운 은덕을 입었을 터인데, 지금 그러지 못하고 있지 않으냐"는 원망이 터져나왔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세종은 어떤 비기(秘器)로 난국을 돌파해 결국 '요순 같은 성군'이라는 칭송을 받아냈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이자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연구실장인 지은이는 세종을 둘러싼 정치인 9명을 내세워 그의 리더십을 여러모로 조명한다. '세종의 재구성'인 셈이다. 조선을 다스리는 통치자로서의 다채로운 면면을 주변 인물의 증언을 디딤돌 삼아 생생하게 살려낸다.

아버지 태종은 여러 왕자들 중 세종을 "공부에는 편집증적으로 매달렸지만 무(武)에는 약한", 그러나 자신이 정치적으로 불가피하게 저질렀던 폭력과 국가의 의미를 이해한 유일한 자식으로 평가했다. 중국에 학문적으로 뒤지고 싶지 않다는 세종의 불타는 자존심을 증언하는 이는 당시 '문형(文衡.최고학자)'으로 불렸던 집현전 학자 정인지다.

흔히 '어진 정승'의 대명사로 불리는 황희가 "'아무리 허물이 많아도 능력이 뛰어나면 기용하라'는 세종의 철학 덕분에 두 차례 옥사사건에 연루돼 파면됐던 내가 청백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작지 않은 충격이다. 이밖에 허조.박연.김종서.신숙주, 아들 수양대군, 정조 등이 '내가 바라본 세종'에 대해 다양한 '썰'을 풀어놓는다. 실록을 기반으로 하면서 살짝 그 '밖'을 오가는 점이 신선한 역사저술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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