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열심히 살라고 격려하는 소리만 넘치는 서울. 이제 사람들은 그런 말로는 힘이 솟지 않는다. 일상에 진절머리가 난 도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힘내지 않아도 괜찮은 곳'으로의 여행.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는 고요한 곳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갖는 것. 그러기에 딱 좋은 곳이 '지리산'이다.
지리산하면 으레 40대의 등산 코스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부모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올랐던 노고단 바래봉에서의 힘든 기억도 스쳐간다. 교통이 불편하고 편의 시설이 전무한 지리산은 20대에겐 불모지로 느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부담스럽게 화려한 청담동의 카페와 홍대앞의 눈부신 클럽에 슬슬 지쳐가는 당신에게는 지리산은 불모지가 아니라 신세계로 다가올 것이다. 5월의 아름다운 꽃바람이 불어도 끝없는 고요함에 적적하고 쓸쓸함마저 느껴지는 지리산은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날을 훌훌 털어버리기에 그만이다.
▶가는 길
대중교통은 권하고 싶지 않다. KTX에서 무궁화호, 그리고 시내버스까지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도착한다고 해도 주변을 돌아다닐 만한 교통 수단이 없다. 택시도 찾아보기 힘들다. 자동차로는 서울에서 구례군까지 약 5시간 걸린다. 금요일 오후에 출발해 휴게소를 한군데도 들르지 않으면 4시간 반 정도. 가는 길에 도로 표지판이 잘돼 있어서 혼자서도 어렵지 않다. 국도로 들어가기 전 전주 시내를 통과할 때도 직선으로 달리면 된다. 밤재터널을 지나 산동면으로 들어가는 길을 주의할 것. 생각보다 과속 카메라가 촘촘하게 설치돼 있으므로 기분 내키는 대로 가속 페달을 밟다가는 기름값에 버금가는 과태료를 물게 된다.
※서울에서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전주IC→남원춘향터널출구→>구례방향(19번 국도)→밤재터널→산동→지리산온천(310㎞)
◇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간고속도로→함양IC→남원IC→구례방향(19번 국도)→밤재터널→지리산온천(310㎞)
※다른 지역에서 가는 길
◇광주 : 88고속도로→남원IC(좌회전)→구례방향(19번 국도)→밤재터널→산동→지리산온천(60㎞)
◇대구 : 88고속도로→남원IC(좌회전)→구례방향(19번 국도)→밤재터널→산동→지리산온천(150㎞)
◇부산A : 남해고속도로→하동IC→하동읍→구례방향(19번 국도)→화개→19번국도→온천(산동)IC→지리산온천(200㎞)
◇부산B : 남해고속도로→서순천IC→7번국도→19번 국도(구례.남원 방향)→온천(산동)IC →지리산온천(200㎞)
▶숙소
지리산온천랜드 노천탕
'호텔'이라고 써있어도 일반 호텔을 생각하면 안된다. 칫솔.비누.샴푸.로션 등은 미리 챙겨가야한다. 부족한 것 투성이인 이곳 숙소에도 매력은 있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으면 은은한 달빛과 함께 5월의 풀내음이 솔솔 풍겨온다. 자동차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것도 큰 장점 중 하나. 새벽 2시쯤 숙소를 나와 캔맥주 하나 사들고 시골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산동면 한 가운데 위치한 '지리산온천랜드'는 거대한 노천온천을 끼고 있어 한번쯤 들러볼 만 하다. 숙박비는 비성수기 기준으로 5만원. 10인실도 15만 4000원까지 할인 가능하다. 인근 모텔은 1박에 평균 3만원, 민박은 2만원대. 061-783-2900. www.spaland.co.kr
▶먹거리
당골식당 주인아저씨
☞'당골식당'의 닭구이가 맛있다.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곳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단골 명소이니 맛과 양, 서비스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포동포동한 닭을 잡기 시작한다. 닭고기 육회도 함께 내오는데, 한번쯤 시도해볼 만 하다. 고기는 숯불에 구운 다음 직접 양봉해서 땄다는 꿀에 찍어 먹는데, 입안에서 살며시 녹는 맛이 그 자체로 감동이다. 텃밭에서 방금 캐온 나물과 상추의 풀내음은 아무리 고기를 많이 먹어도 깔끔한 여운이 남도록 입안을 헹궈준다. 후식으로 내오는 차가운 산수유차도 일품이다. 닭구이 외에도 멧돼지.흑염소.오리 등을 맛볼 수 있다.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는 산 속에 위치하고 있어 식당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와달라고 하면 된다. 061-783-1689.
▶볼거리
화엄사 연등제
노고단까지는 차로 이동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바래봉까지는 걸어가야 하지만 등산이 버겁다면 과감히 포기하고 차를 몰아 천은사(泉隱寺)로 간다. '샘물이 숨어버렸다'는 뜻의 천은사는 사시사철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사찰. 인근 나무 그늘에 차를 세우고 의자를 끝까지 뒤로 젖힌 다음 발을 위로 뻗고 한 두시간쯤 낮잠을 자보는 것도 좋다. 사찰 옆 저수지에서 불어오는 가벼운 5월의 꽃바람에 도시에서의 불면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산이 저기에 있으니 올라야한다'는 목표의식에서 잠시 벗어난다면, 지리산의 곳곳에서 자신만의 숨은 매력을 찾을 수 있다. 화엄사도 노고단도 내 맘대로 즐기면 그만이다.
♣지리산 여행에서 이것만은 꼭!
산수유차
2. 즉석에서 잡아주는 닭 바로 구워 먹기. 뽕나무 열매로 빚은 술 마셔보기
3. 심야에 맥주 마시며 혼자 걸어보기(편의점은 딱 한군데, 지리산온천 입구에 있음)
4. 새벽에 수영하기(수영복과 수영모자 2000원에 대여 가능)
5. 화엄사 들러 연등제 구경하기
6. 노고단 오르다 자장면 먹기(노고단 휴게소)
7. 천은사 들러 팥빙수 먹고 저수지 옆에서 낮잠 자기(팥빙수 5000원, 산수유 차도 맛있음)
8. 돌아오는 길에 천안에서 호두과자 사먹기
이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