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없는 음악시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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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언제부터인지 음악 실기시험에 커튼을 치는 관례가 생겼다. 음악인구가 늘어나고 경쟁이 심해지고 학부형의 극성도 심해지고 마음 약한 선생님이 흔들리고 공정치 못하다고 불평이 생기면서 입학시험 때 막을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부정은 없어졌는지.
그리고 내신성적이 대학입시에 방영되면서 예술중고등학교의 실기시험에도 막을 쳐왔다. 심지어는 장래 연주가의 등용문인 콩쿠르까지도 나중에 이러쿵저러쿵하는 게 듣기 싫은 심사원들이나, 심사원들을 보호한다는 주최측의 의견대로 막을 치는 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무리 소리의 예술이라고는 하지만 무대에서 청중과 자기 자신을 나누는 연주행위를 막 뒤에서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지 모른다. 연주가들이 무대에서 혼신을 다해 연주할 때의 감동은 라디오나 레코드를 통해 듣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인데….
학생시절 잠을 설쳐가며 호로비츠, 휘셔 디스카우 표를 사려고 줄서고 그들을 무대에서 보았을 때의 가슴 떨림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하루종일 어떤 때는 밤늦도록 실기시험이나 콩쿠르심사대에 앉아 검정막을 쳐다보며 듣다보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나, 제대로 듣고 있나 의문이 생긴다.
그러다 보니 막 뒤에서 혹시 졸지도 모르는 심사원들 귀를 번쩍 뜨이게 하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크게, 틀리지 않고 칠 수 있는 곡을 곡예사 훈련시키듯 가르치는 것 같다. 학생들에게 음악의 아름다음을 심어줄 여유도, 차근차근 쌓아가야 할 많은 레퍼터리를 고르게 공부할 여유도 없이 점수 잘 나올만한 화려한 곡만 달달 치게 하는 절뚝발이 교육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터에 서울예고·예원의 새 교장선생님이 실기시험에서 커튼을 걷었다. 소신껏 채점하는 선생님의 양심, 그것을 믿어주는 학교와 학부형…. 그래서 재주 있는 음악도를 대상으로 한 음악교육이 일부에서나마 새로이 시작되었다. 입학시험에도, 콩쿠르에서도 커튼이 걷혀지는 조용한, 그러나 굉장한 혁명의 새출발이라고 믿으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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