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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계부 살해사건/김보은양 내일 항소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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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제2의 김부남” 결론여부 관심/김양 다른 선택여지 없었다 변호인/복수조장 우려… 엄벌 불가피 검찰측
9세때부터 12년간이나 자신을 성폭행해 온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김보은양(21·단국대 무용2)관 남자친구 김진관군(22·단국대 사회체육2)에 대한 항소심 첫공판이 30일 열린다.
김양은 지난 1월 충북 충주에서 성폭행을 견디다 못해 검찰 사무과장인 의붓아버지 김영오씨(53)를 김군과 함께 식칼로 살해해 1심에서 김양은 징역 4년,김군은 징역 7년이 선고된뒤 검찰과 피고인들 모두 항소한 상태다.
이번 재판은 무엇보다 지난해 9세때 자신을 성폭행한 옆집 아저씨를 21년만에 살해하고도 정상이 참작돼 집행유예로 석방된 김부남씨(30)에 이어 김양도 법원의 관대한 처분을 받고 풀려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여성단체들은 이번 사건을 「제2의 김부남사건」으로 규정,비상한 관심을 갖고 전국 56개 단체로 구성된 「김보은·김진관사건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활발한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우선 민변소속 변호사 등 22명으로 구성된 공동변호인단은 이번 사건을 정당방위로 보고 무죄라는 입장이다.
변호인측은 『1심 재판부가 김양의 범행이 복수심에서 비롯된 치밀한 살인이라고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나 살해된 의붓아버지는 김양의 정조를 유린한 것은 물론 자유로운 생활을 전혀 못하도록 억압해 왔으므로 계속된 성폭행·억압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김양의 행위는 정당방위』라는 것이다.
변호인측은 또 『숨진 김씨가 검찰간부로 고소·진정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가능성이 커 김양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살인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정상론을 편다. 변호인측은 법정에서 김양이 받았던 성적피해를 적나라하게 폭로,김양이 살인까지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정황을 재판부에 이해시켜 무죄 또는 집행유예를 끌어낸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그러가 검찰은 『어떤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과 그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김양 등이 대학생 신분으로 법테두리내에서 응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사회적인 살인을 택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한다.
검찰은 또 『만일 김양 등이 가볍게 처벌될 경우 우리사회에서 개인적인 복수가 조장될 우려마저 있어 보다 중한 벌에 처해야 한다』고 항소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담당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이용우부장판사)는 『편견없이 다른 형사재판과 동일하게 취급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미풍양속을 해치는 법정증언은 제지하는 것이 원칙이나 김양이 성폭행에 대한 노골적인 증언을 하더라도 자신의 피해를 밝히는 방어권의 차원이므로 막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행법상 살인범은 5년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으나 심신미약 등 다른 특별한 이유가 없더라도 재판부가 정상을 참작,2년6월까지 형을 낮출수 있고 3년이하를 선고받을 경우 집행유예가 가능하므로 이론적으로는 김양도 집행유예로 석방될 수는 있다. 그러나 살인범이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최근 김양 등의 모교인 단국대 교수 2백60여명이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내는 등 대학가 및 여성단체 등 각계로부터 관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대책위측은 석방을 촉구하는 서명운동 및 시위를 통해 구명운동을 벌일 예정이다. 결국 이번 항소심은 사적 구제를 금지하고 있는 실정법상의 원칙론과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정상론 사이에서 재판부가 어느쪽에 귀를 기울일지가 김양의 석방여부와 관련된 핵심이다.<남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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