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거」싸고 첨예한 대립/문 연 14대국회 어떻게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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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야 강경입장 고수… 진통 심할듯/여당제출 법안 처리 등 불투명
14대국회가 임기가 시작된지 한달을 꽉채워 29일 개원했다. 여당의 단독소집에 야당이 독자(?) 등원한 기묘한 형태의 개원모습에서 이번 국회의 파행성과 험난한 전도를 읽을 수 있다.
여야는 개원 첫날 의사일정만 묵시적으로 합의했을뿐 앞으로의 모든 일정을 불투명한 상태로 놓아두고 있다. 상황이 이같이 꼬인 것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둘러싼 여야간 입장차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 따라 92년 6월30일까지 실시토록 돼있는 단체장선거 시기를 95년실시로 연기하자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마련해 이번 국회에서 최우선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치른 총선과 12월에 있을 대통령선거외에 광역·기초 단체장선거까지 연내에 실시한다면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없다는게 정부·여당의 논리다.
민주당과 국민당은 지방자치법에 명시돼 있는 단체장선거를 정부가 실시하지 않은 위법을 규탄하고 대선과 동시실시하자는 공격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야당은 정부·여당의 단체장선거 연기방침이 대통령선거의 관권·행정선거 자행의도로 파악하고 있다. 15개 시·도와 2백60개 시·군·구의 장을 임명직이 아닌 민선으로 뽑아놓을 경우 여권의 선거과정 통제가 어렵기 때문에 단체장선거를 연기하려 한다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다.
김대중민주·정주영국민당대표의 25일 회동은 야권공조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된 반면 여야간 단체장선거 문제를 풀기 위한 협상의 여지를 더욱 좁혀 놓았다.
야당은 특히 29일의 국회 의장단 선출과 개원식일정을 마친뒤 최우선적으로 단체장선거 실시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민자당이 잡아놓은 ▲16개 상임위원장(운영위 제외) 선출 ▲정부·여당의 14개 입법안처리가 제대로 이뤄질지 대단히 불투명한 실정이다.
상임위원장 배분문제도 간단치 않은 쟁점사항. 13대 당시 민주당은 4개 상위를 배정받았으나 여야 의석분포가 비슷해진 이번 경우 민주당은 6개,국민당은 2개의 상위 위원장 자리가 인정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단체장선거 공방에 밀려 협상표면에는 떠오르고 있지 않으나 실리측면에서 여야가 가장 신경쓰는 부분중의 하나다. 민자당측은 야당측에 6∼7개 상위는 내줄 수 있다는 내부입장을 정리했다.
투자신탁 3사에 대한 한은의 2조9천억원 특별융자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 동의안도 이번 국회에서 처리해야할 중요사안이다. 관행적으로 한은특융에 대한 국가의 빚보증은 국회의 동의사안으로 취급되지 않았으나 이번부터 국회를 존중한다는 김영삼민자당대표의 뜻에 따라 동의를 받기로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특별융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방침이어서 처리방식이 주목된다.
민자당은 농어촌발전 특조법,성폭력방지 특별법,개인정보보호 특별법,산업기술대학 육성법안 등 시급한 민생법안을,민주당 등 야당은 증시침체,중소기업 도산사태,고속전철 및 제2이동통신 사업 등 의혹성 대형 프로젝트와 환경·치안부재 등의 문제를 집중 제기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같은 현안은 기본적으로 단체장선거 문제가 어떻게 처리될 것이냐에 종속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여당 일각에서는 광역선거를 대통령선거와 함께 치르되 기초선거만 연기하는 방안 등 타협안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김영삼대표는 이를 일축했다.
야당측에서도 단체장선거는 연기하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할만한 특별법 제정,대통령선거법의 개정 등 양보안이 국민당쪽에서 흘러나오기도 했다.
따라서 개원국회는 초반의 공전사태를 빚은뒤 여야 대표회담,또는 청와대 영수회담의 형태를 통해 극적으로 정상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4대 국회는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전반적 불신속에서 탄생한만큼 파행국회에 대한 따가운 여론을 여야 지도부가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다 곧바로 대통령선거의 득표전과 연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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