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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컴퓨터업체 전자파규제 "SOS"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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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체신부 일제단속 전자상가 된서리>
올 6월은 중소컴퓨터업체들에 「정보문화의 달」이면서도 잔인한 달이 됐다. 원래 6, 7, 8월은 더운 날씨 탓에 컴퓨터판매가 저조한데다 올해는 경기침체까지 겹쳐 컴퓨터시장이 살아날 줄 모르고 있다. 최근 서울청계천·용산단지의 컴퓨터상가들은 매출이 80% 가까이 격감하자 자금압박으로 부도를 내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기존 세일품목을 다시 세일하거나 아예 문을 닫고 휴가를 떠난 상가도 생기고 있다.
더구나 중소업체들이 실제로 곤욕을 치른 일은 전파관리법 시행령 「전자파장해 (EMI) 검정규칙」이 제정된 지 22개월, 컴퓨터가 대상기기로 고시된 지 15개월만인 6월을 체신부가 EMI컴퓨터 집중단속기간으로 정해 지난9일 대형컴퓨터단지를 급습한 것. 중소업체들은 가뜩이나 저조한 판매까지 원천 봉쇄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3천여 중소컴퓨터업체가 밀집한 용산전자상가에서는 10여개 점포가 수십만∼수백만원의 벌금과 함께 판매금지라는 행정조치를 받았다.
이에 따라 단속요원이 온다는 소문만 들려도 컴퓨터상가들은 일제히 문을 닫거나 아예 컴퓨터를 치워버리고 디스켓이나 소프트웨어 등을 판매하는 상가로 둔갑하고 있다.
EMI는 전자기기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전자파가 각종 전자기기들 사이의 오동작과 통신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90년 법규로 기준치를 정했다.
그러나 현재 국내컴퓨터, 특히 중소기업의 제품들은 가격경쟁에서 우위를 갖기 위해 주요부품을 대만제 등 값싼 외국부품에 의존하는 실정으로 이들 부품들은 자국에서는 수출품이라는 이유로, 국내수입시는 부품이라는 이유로 EMI검정을 전혀 받지 않는다.
국내 업체들도 2억여원에 달하는 시험소를 갖추기는 어렵고 정부의 전파연구소나 검사 시설을 갖춘 대기업에 의뢰하면 경비지출로 인한 가격상승과 제품시판의 지연, 기밀누출의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아예 EMI검정은 생각도 안하고 있는 실정. 특히 EMI해소기술이 없어 제품을 한번에 통과시키지 못해 여러 번의 시험을 거치는 데다. 이마저도 시험대행업체에 맡겨 경비가 턱없이 올라가게 된다. 이는 가격과 다품종·소량제작으로 대기업제품을 압도했던 중소업체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따라서 중소업체들은 『비수기에 고통을 받고 있는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 중소기업을 죽이자는 저의가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체신부의 전파관리국 이정행 기술과장은 『유예기간을 두었으나 전혀 시정노력이 없어 법을 집행할 수밖에 없었다』며 『현재 국내에는 21개의 시험소가 있는데 기존 시험소에서 체신부에 신설허가를 내주지 말 것을 강력치 요구할 정도로 의뢰건수가 없고 경비도 한 모델당 31만8천원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중소업체들은 부품수입은 허용하면서 완제품만 검사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컴퓨터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많은 양의 전자파를 발생하는 TV·라디오·헤어드라이어·전기믹서·전자레인지 등은 그대로 놓아두는 것은 형평상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과장은 『부품별 EMI검정도 고려하고 있으나 워낙 수가 많아 역부족이며 사실 부품으로 통과됐더라도 완제품이 되면 EMI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시행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며 『다른 전자기기도 현재 단속 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원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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