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 타자는 기(氣) 싸움의 선봉장입니다. 4번이 쉽게 물러나면 다른 타자들은 '상대 투수가 센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죠. 이리 가나 저리 가나 4번은 찬스에 걸리게 돼 있습니다. 타율은 좀 떨어져도 한방을 터뜨릴 수 있는 장타가 필요하죠."
해태 타이거즈 시절, 팀의 중심 타자로 맹위를 떨쳤던 김성한 MBC-ESPN 해설위원의 말이다.
8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벌어진 두산과 삼성의 경기는 4번 타자의 역할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장면 1. 1-0으로 앞선 1회 말, 두산 4번 김동주는 1사 1루에서 상대 선발 투수 임창용의 공을 강타해 135m짜리 2점 홈런을 터뜨렸다. 두산은 3-1로 이겨 5연승을 이어갔다. 이날의 수훈선수로 뽑힌 김동주는 내야 한 쪽에 마련된 무대에 올라갔고, 팬들은 "김동주"를 연호했다.
#장면 2. 0-3으로 뒤진 2회 초, 삼성 4번 심정수는 선두 타자로 나와 삼진을 당했다. 4회 초에는 무사 1루의 찬스에서 등장했으나 또다시 삼진을 당했다. 6회 초 세 번째 타석에서는 포수 파울 플라이로 물러났다. 6회 말 수비에 들어가기 전 전광판에는 '선수 교체'라는 글자가 떴다.
두산이 5연승을 달리는 동안 김동주는 0.471(17타수 8안타.홈런 2개.장타율 0.882)의 맹타를 터뜨렸다. 반면 최근 8경기에서 1승7패의 부진에 빠진 삼성의 심정수는 5경기 연속 무안타다.
두 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홈런 9개로 공동 1위인 한화 4번 김태균은 시즌 장타율 0.699를 자랑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장타를 날려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앞서 갈 때는 '흥'을 일으킨다.
롯데 4번 이대호도 빼놓을 수 없다. 4월 26일 현대전에서 10회 말 끝내기 홈런을 터뜨렸고, 4일 삼성전에서는 오승환을 상대로 8회 말 3-3 동점을 만드는 2점 홈런을 뽑아냈다.
4번 타자가 부진한 팀은 어려운 경기를 이어가고 있다.
LG 4번 박용택은 5월 7경기에서 타율이 0.192까지 떨어졌고, 그 사이 팀도 2위에서 하위권으로 밀렸다. KIA, 삼성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한편, 9일 예정된 프로야구 4경기는 비로 모두 연기됐다.
강인식.장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