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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기술 최강국이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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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국을 세계 11대 경제강국으로 이끈 수출역군 중에 휴대전화가 있다. 1990년대 초 전파공학과가 신설돼 5년 동안 배출된 젊은 피가 휴대전화 개발에 대거 참여했고, 또 2002년부터 5년간 재지원된 전파인력의 추가 참여로 휴대전화 강국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술 면에서 아직 노키아와 모토로라 등에 뒤지고 있다. 전파기술의 창조를 위한 리더를 길러내는 면에서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가 신체적.정신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하드웨어적인 영양공급과 소프트웨어적인 지식공급에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듯, 전파 역사가 없는 우리는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전파 분야에서도 과거에 발견.발명됐던 이론이나 기술의 도움 없이 독창적으로 연구가 수행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주 간단한 발명.발견일지라도 마찬가지다. 파라데이의 전자파 유도 현상으로 막스웰이 전자파의 존재를 예견했고, 그로 인해 헤르츠가 전자파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증명했으며, 헤르츠의 결과를 이용해 마르코니는 전파 시스템을 처음으로 구성한 것이다. 전파 기술의 발전을 위해 과거의 이론이나 기술들을 역사자료로 보유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역사 속 인물들의 업적을 일반에게 자연스럽게, 그리고 쉽게 알리는 일은 IT강국.전파강국을 꿈꾸는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전파기술을 다수에게 교육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학교 교육 외에 기존 기술을 재생해 누구든지 보고 만들어 볼 수 있는 장치를 꾸며 놓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파 역사가 없는 우리는 선진국에서 발명.발견됐던 것을 먼저 재현해 놓고, 차차로 우리의 전파역사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확대되고 있는 요즈음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마술적인 전자파 특성을 이용해 대중화도 이루는 한편 우리 환경에 맞는 인재양성 시스템을 도입해 많은 두뇌를 길러야 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전파기술의 리더들을 키워내는 훌륭한 대학원 시스템과 연구 활동을 지원하는 지원체제가 있다. 우수한 전파기술 리더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연구하게 하고, 기회를 주는 시스템 구축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쓰는 새로운 역사가 우리를 작지만 강한 전파기술 국가로 만들어 줄 것이다. 전파기술 강국이란 기존 전파기술도 활용하면서 새로운 전파기술을 계속 창조해 가는 나라를 의미한다. 체계적인 인재 배출 시스템이 없이는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없다.

김인석 경희대 교수·전파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