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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작은 폭군들의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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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한화 김승연 회장 사건'의 여파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어쨌든 보복 폭행 사건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밝혀질 경우 김 회장은 법률이 규정한 대로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대기업을 대변하는 전경련 쪽에서는 부정(父情)에 눈먼 한 아버지의 사적 일탈행위 정도로 사건을 축소하고 싶은 눈치다. 그러나 대다수 시민들은 드라마에서도 보기 어려울 이 사건의 황당함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

악명 높은 조폭 조직의 이름까지 등장하는 등 김 회장 사건의 여진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법적으로 정리되면서 조만간 잊힐 터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한국 사회의 속살을 선정적인 방식으로 폭로한다는 점에서 매우 징후적이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드러내기는 원하지 않는 치부가 햇빛 아래 노출된 것이다. 이 사건의 전말은 '재벌공화국' 안에서 대자본의 힘이 얼마나 거대한 권력으로 사회 깊숙이 뿌리내렸는지를 그림처럼 생생히 보여 주기 때문이다.

눈부신 경제발전의 견인차였던 한국 대기업집단이 명실상부한 권력주체로 자리 잡았음을 우리는 '머리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자본이 강대해질수록 그 힘의 행사 방식이 매끄러워지고 세련되므로 경제권력의 실체성을 '피부로' 잘 느끼지는 못한다. 국부(國富) 창출과 생산력 증대, 일자리 제공과 부(富)의 사회적 환원 등의 아름다운 말로 기업의 정체성을 채색하기 때문이다. 이런 담론들은 경험적 사실에 입각하므로 설득력이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당연시하는 우리는 공기 같은 그 말 속에서 호흡하며 산다. 그러나 동시에 이 말들이 대자본이 획득한 적나라한 실체적 권력을 가리는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김 회장 사건은 공권력을 우습게 볼 정도로 커버린 자본권력의 폭력적 실체를 벌거벗은 맨살로 보여 준다. 자본은 합리적이므로 폭력과는 무관하며 고도의 정당성을 갖는다고 주장해 온 전경련과 재벌들이 김 회장 사건에 곤혹스러워하는 본질적 이유는 이 때문이다. 단지 체면 손상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공룡 같았던 국가권력은 정치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많이 순화되었다.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던 거대한 정치적 폭군들은 이미 축출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 곳곳에는 크고 작은 폭군들이 아직 건재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영역 안에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자랑하면서 조직 운영의 민주적 원칙과 공공적 합리성을 비웃기 일쑤다.

먹고사는 문제에 바쁜 소시민들에게는 목줄을 쥐고 있는 작은 폭군들이 저 멀리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보다 더 무서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김 회장 사건을 계기로 알려진 한화그룹 경영과 관련한 일화들은 새로운 형태의 봉건군주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행태가 특정 기업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곳곳에 산재한 작은 폭군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철옹성을 쌓는 데 여념이 없다. 충성하는 자들에게는 단물을, 거역하는 사람들에게는 철퇴를 내려치는 것이다. 자신의 기득권과 권위에 도전하거나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사정없이 손보고 내치는 점에서 작은 폭군들은 큰 폭군을 빼다 박았다.

거대한 정치적 폭군이 단두대(斷頭臺)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 촘촘히 박혀서 건전한 삶을 위협하는 작은 폭군들의 횡포가 제어되지 않을 때 일상의 민주주의는 먼 이야기가 된다.

폭군들이 스스로 변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쥐꼬리만 한 권력이라도 주어진다면 남용하기 쉬운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폭군의 인간미와 온정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공권력이든 사적 권력이든 간에 합리적 비판과 제어장치에 의해 견제되지 않는 권력이 타락하게 마련이라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한화 김 회장 사건은 이 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번 입증한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사회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