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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여성작곡가 김순애씨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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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그대 있음에/ 내 맘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리움이여/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 있음에(김남조 시)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벨텔의 편지를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4월의 노래(박목월 시)

가곡'그대 있음에''4월의 노래'의 작곡자 김순애씨가 6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주 타고마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87세.

고인은'국내 최초의 여성 작곡가'다. 황해도 안악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나 서울 배화여고를 졸업했다. 1941년 이화여전(이화여대의 전신) 피아노과에 입학했으나 당시 작곡과에 몸담고 있던 김세형 교수의 권유로 작곡으로 전공을 바꿨다. 졸업 후에는 미국 로체스터 이스트만 음대에서 애런 코플랜드를 사사했다.

데뷔작은 1938년 이화여전 재학 시절에 자작시에 곡을 붙인 가곡'네잎 클로버'. 1939년 부민관에서 열린 이화음악회에서 첫 작품을 발표했다. 20여곡의 가곡을 비롯해'오케스트라를 위한 작은 소나타'(1961년), '2악장의 교향곡'(1963년)'바이올린 소나타'(1958년), 오페라'직녀, 직녀여!'(1984년)등을 작곡했다. 1971년에는 한국적 선율에 의한 성탄 캐롤을 작곡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4월의 노래'는 한국전쟁 직후 잡지사의 청탁을 받고 작곡해 '학생계' 창간호에 실린 가곡이다.

1953년부터 31년간 모교인 이화여대 음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한국작곡가협회 부회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1986년 이화여대에서 정년 퇴임할 때 육군사관학교에서는 그가 일찍이 교가를 작곡해 준 감사의 뜻으로 그를 초청해 특별 사열식을 거행했다.

생전에 당뇨로 고생했던 고인은 2003년부터 세 딸 김초은(중국학 연구가).초영(성악가).초진이 살고 있는 미국에 머물러 왔다. 남편인 성악가 김형로 전 서울대 음대 교수는 한국전쟁 때 납북돼 타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문화상(1964), 제1회 한국작곡상(1974), 보관문화훈장(1984), 대한민국예술원상(1986), 국민훈장 모란장(1986), MBC 가곡 공로상(1990), 3.1문화상(1993)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역사에 비친 음악가들'(박영출판사.1976)이 있다.

빈소는 삼성의료원에 마련됐으며, 12일 오전 9시 영락교회 벧엘기도실에서 발인 예배가 거행된다.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 진건면 영락교회 공원묘지. 02-3410-3153.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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