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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미래] "우리 땅밑에 지진의 눈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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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지진은 지구 내부의 급격한 지각변동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맨틀의 대류현상으로 떨어져 있는 지각이 충돌하거나 하나의 지각이 갑자기 쪼개지면서 생긴 에너지가 지표면에 전달되는 것이다. 1978년 본격적인 지진계측이 시작되면서 국내에서는 인명손실을 기록할 만큼의 큰 지진은 없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유라시아판의 내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안전할 것으로 믿고있는 한반도의 지각구조를 놓고 최근 지질학계에 평지풍파가 일고 있다. 한반도를 샅샅이 들여다본 독일의 인공위성 데이터가 발표되면서 국내 지질학계는 '지진 안전지대 논란'으로 끓어오르는 중이다.

논란의 불씨는 독일 포츠담의 연방지구물리연구소 인공위성통제센터에 근무하는 한국인 과학자 최승찬(42) 박사가 지폈다. 포츠담 지구물리연구소가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챔프'의 자기장 데이터, '그레이스'와 'EGM96'의 중력 데이터 등을 이용해 한반도의 지하 20~50㎞에 숨겨져 있는 정보를 파헤쳤다.

챔프는 광물의 형성과정에서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자기장 측정용 인공위성으로 2000년 궤도에 진입한 독일의 과학위성이다. 60일 동안 전지구의 자기장을 조사한다. 지구를 한바퀴 돌 때마다 고도를 달리해 지각의 깊이별 자기장 분석이 가능하다.

지난해 3월 발사된 그레이스는 두대가 일정한 간격(2백20㎞)을 두고 도는 쌍둥이 위성으로 지각의 중력장을 조사한다. 지표 밑에 밀도가 높은 물질이 존재하면 앞서가는 위성의 속도가 느려져 둘 사이의 간격이 좁아졌다가 뒤쫓아오는 위성이 그 지점을 지나면서 간격을 다시 회복하는 방식으로 중력장을 계측한다. EGM96 또한 96년 쏘아올려진 독일의 인공위성으로 지상의 중력장을 측정한다.

최박사는 이 세가지 위성을 이용한 극동아시아 자료를 정밀 분석한 결과 한반도 지하 20㎞ 지점에 동서를 가로지르는 충돌대가 위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박사는 이미 지질학적으로 확인된 북중국판과 남중국판의 충돌대인 친링-다비산 충돌대와 탄루 단층에 의해 북쪽으로 이동된 산둥반도의 수루 충돌대에서 중력장과 자기장이 특이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같은 중력장.자기장의 이상치가 대륙충돌대로 예상된 충남 홍성지역을 지나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것까지 확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최박사는 "북중국판과 남중국판의 충돌대가 다시 산둥반도 및 황해안을 지나 한반도의 중부이남 지역을 통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최박사의 이같은 데이터로 인해 지난해 충남 청양.홍성 일대에서 에클로자이트를 발견, 한반도 내 대륙충돌대의 존재 가능성을 제시한 전북대 오창환(지구환경과학과) 교수가 힘을 얻고 있다. 에클로자이트는 대륙 충돌시 발생하는 고압에서 만들어지는 암석으로 석류석과 옴파사이트 등의 광물로 이뤄져있다.

지하 50~60㎞에서 변성된 뒤 지상으로 서서히 올라와 지표면에 노출된 것으로 일대가 대륙충돌대였음을 알리는 증거암석이다. 오교수는 "최박사의 데이터로 충남 청양.홍성 일대가 동서충돌대 위에 있다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며 "중부 내륙 일대에서 에클로자이트와 같은 증거암석을 찾게되면 동서충돌대 가설은 확실한 사실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박사는 수차례의 세미나에서 많은 반론에 부닥쳤다. 국내의 지층은 주로 북동에서 남서로 흐르는 단층구조가 많아 동서를 가로지르는 대륙충돌대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주된 반론이다. 즉 인공위성 자료로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최박사는 "대륙충돌대의 깊이가 최소 20㎞ 지점에 위치해 한반도의 상부지층에서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최박사는 한반도에서 지진의 활동이 미약한 이유를 '태풍의 눈'에 빗대어 설명했다. 한반도는 네가지 지각이 몰리는 '힘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유라시아판의 일부로서 새로 생성 중인 아무르 판이 북동쪽의 오호츠크판에 의해 시계방향으로 밀려오고, 남서쪽의 남중국판이 북동 방향으로, 그리고 남동쪽의 필리핀 및 태평양판이 북서쪽으로 이동하며, 아무르판 북서쪽이 인도양판에 의해 반시계 방향으로 움직여 네 방향의 힘이 한반도로 몰리고 있음을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위성을 통해 확인했다.

GPS란 지표에 막대를 세운 뒤 GPS 위성이 지나가면서 얼마만큼 이동했는지를 분석한 것이다. 눈에 띄는 사항은 이 같은 힘이 한반도에 모이면서 상쇄된다는 점이다. 한반도가 '태풍의 눈'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1년에 북서 방향으로 25.1㎜를 움직이는 필리핀판의 힘은 한반도에서 연간 4.5㎜로 줄어들었다.

최박사는 "한반도에 몰리는 네 가지 힘 가운데 한쪽의 힘이 강해지거나 약해지면 힘의 균형이 무너질 것이며 그럴 경우 더 이상 한반도가 지진의 안전지대로 불릴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마무리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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